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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의 아침] ‘필부의 복수’와 ‘시정잡배의 복수’ /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필부의 복수’와 ‘시정잡배의 복수’ /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김규환 기자
입력 2016-08-17 18:10
업데이트 2016-08-1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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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 원나라 때 기군상(紀君祥)이 쓴 희곡 ‘조씨고아’(趙氏孤兒)는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 스테디셀러다. ‘복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이 희곡은 2013년 개봉된 영화 ‘천하영웅’과 TV 드라마 ‘조씨고아’, 지난해 국내 연극상을 휩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2500여년 전인 춘추시대 진(晋)나라 때 간신 도안고(屠岸賈)와 현신 조순(趙盾)에 관한 비극적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도안고는 권력을 오로지하기 위해 영공(靈公)의 총애를 받던 정적 조순을 모함해 그와 가문을 멸족했다. 이때 태어난 그의 손자 조무(趙武)의 존재를 알게 된 도안고는 그마저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조씨 집안의 식객 떠돌이 의원 정영(程?)이 친아들을 희생시키고 천신만고 끝에 조무를 구해 낸다. 다 자라 멸문의 진상을 알게 된 조무는 마침내 도안고를 죽여 집안의 원수를 갚는다.’ ‘좌전’ ‘국어’ ‘사기’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에 허구를 적당히 뒤섞어 사실인 양 버무려 놓은 작품이다.

중국처럼 복수가 일상화한 나라도 없다. 중국인을 사로잡고 있는 진융(金庸)의 ‘소오강호’와 ‘의천도룡기’, 하이옌(海宴)의 ‘랑야방’ 등 무협소설은 강호의 은원을 중심으로 복수의 혼을 불어넣는다. 이를 소재로 반복 리메이크해 드라마로 연일 쏟아내는 TV 채널은 복수의 칼을 벼리게 한다. ‘역사책의 전범’으로 불리는 사기마저 정당성 여부를 떠나 자신을 총애하는 사람을 위해,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남의 부탁으로 복수에 나서는 ‘필부의 의(義)’를 보여 주는 5명의 자객을 영웅으로 묘사해 복수의 길로 인도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절치부심’(切齒腐心), ‘도광양회’(韜光養晦), ‘굴묘편시’(掘墓鞭尸), ‘이혈세혈’(以血洗血), ‘칠신탄탄’(漆身?炭)의 고사성어는 복수를 지선(至善)으로 미혹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이라는 성어를 널리 전파한 사마천은 이를 통해 ‘군자는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리더라도 꼭 복수를 해야 한다’는 의미를 극대화해 복수의 화신으로 이끈다.

현대 중국인들도 걸핏하면 복수의 칼을 뽑아 든다. 힘센 미국에 대해서는 비위가 상하더라도 으름장만 놓고 끝내지만 만만한 상대에게는 가차 없이 실력을 행사했다. 2000년 중국 마늘에 관세를 올린 데 대해 한국산 핸드폰을, 2010년 일본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해에서 중국 어선 선장을 체포한 데 대해 희토류를,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에게 노벨평화상을 준 노르웨이에 대해 연어 수입을 금지해 항복을 받아 냈다. 사드 배치에는 관영 언론들을 앞세워 ‘한국 때리기’에 골몰하고 비관세 장벽을 동원해 무역 보복에 나서는 것도 모자라 한국 배우의 팬 사인회를 취소하고 구멍가게 오퍼상에게까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괴롭히는 쪼잔한 보복도 서슴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래도 ‘의’를 앞세운 필부들의 복수라고 봐줄 만하지만, 오늘날에는 성에 차지 않는다고 상부터 걷어차 버리는 시정잡배의 복수를 남발하는 탓에 눈 뜨고 보기가 역겨워진다. 중국이 이런 치졸한 행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 곧 중화민족의 부흥은 한낱 꿈일 뿐이다.

khkim@seoul.co.kr
2016-08-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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