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정 컬처 살롱] 엄마와 딸

입력 : ㅣ 수정 : 2016-07-1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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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희정 드라마 평론가

▲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

“착한 내 딸이 왜 이렇게 됐을까.”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이 세상 모든 여자는 ‘누구나’ 딸이고 ‘대부분’ 엄마로 살아간다. 서로에게 기쁨이면서 희망이고, 때로는 슬픔이면서 아픔인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마음을 흔들었다. 다시 태어나면 엄마의 딸로 때어나고 싶다고, 삶이 수백 번 바뀌어도 너의 엄마로 또 살아가겠다고 서로에 대한 의리를 힘주어 말하지만 모녀지간의 일상은 맹세와 달리 치열한 갈등의 연속이었다.

같이 볼까 하는 마음에 거실에서 TV 보고 계신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뭐하세요?” “테레비 본다.” 코고는 소리가 낮게 울린 듯해서 “주무시지 않았어요?” “안 잔다니까. 연속극 보고 있다고.” 엄마는 졸다 들킨 아이처럼 괜히 목소리를 높이셨고, 그 바람에 나는 심통이 나 같이 보자는 말도 하지 않은 채 방으로 돌아갔다.

세월의 옷을 입은 엄마를 보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건강마저 엄마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건 슬프기까지 하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맛난 음식과 예쁜 옷을 만들어 주셨다.

때로는 아빠보다 힘센 모습으로 집안일을 하셨고, 어떤 때는 대범한 용기로 가족을 지켜 내셨다. 애지중지하는 흰색 양산 쓰고 한여름 거리를 사뿐사뿐 걷는 ‘젊은’ 엄마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두서없이 부딪치는 모녀의 일상을 몇 장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해결해 주진 못한다.

엄마는 딸을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 어떤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딸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겠느냐며 엄마 말대로만 하면 잘될 것이라고 한다. 딸들은 엄마에게 원한다. 엄마의 길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힘이 들어도 해볼 터이니 지켜봐 달라고.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삼십대 딸은 그렇게 말한다. 고생하는 엄마를 보며 엄마가 원하는 착한 딸로 살아왔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냐고. 이제는 좀 놓아 달라고. 그건 엄마의 삶이지 나의 삶이 아니라고.

도움이 필요할 땐 돌아서 있었고, 독립이 필요할 땐 과도하게 간섭했다. 격려가 필요할 땐 야단쳤고, 따끔한 일침이 필요할 땐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했다. 엄마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딸에게 엄마는 항상 아쉬운 존재였다. 엄마도 한때는 딸이었다. 자신은 엄마 말을 어긴 적이 없다고 하시지만, 외할머니의 말씀은 달랐다. 세상 안에서 자유롭고 싶었고, 세상 밖으로 도전해 보고 싶어 하며 할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한다. 무엇이 엄마로 하여금 청춘의 꿈을 잊고 잔소리 쟁이가 되게 했을까.

엄마와 괜한 신경전을 치르다 세수 한번 하고 거울을 보니 보이는 것은 나인데 그 안엔 엄마가 있었다. 오십의 딸이 아직도 걱정인 엄마도 문득 딸에게서 오래전 잊었던 젊은 시절의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 생각과 감정이 대물림되는 모녀지간, 자신의 과거와 미래는 서로의 모습 안에 들어 있었다. 마치 오래전 잘려 나간 탯줄이 다시 이어진 듯 엄마와 딸은 하나였다.

딸들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착하고, 엄마는 딸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엄마의 엄마가 그러했고, 딸의 딸이 그러할 것처럼.

드라마 평론가
2016-07-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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