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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수원 화성 방문의 해/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수원 화성 방문의 해/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16-06-24 18:16
업데이트 2016-06-2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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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이 어색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수원에 있는 화성’이라는 뜻이라면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수원과 화성의 역사를 살펴보면 ‘역전앞’처럼 동어반복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정조 17년 ‘수원부(水原府)의 호칭을 화성(華城)으로 바꾸고 어필(御筆)로 현판을 써서 장남헌(壯南軒)에 걸었다’고 적었다. 장남헌은 화성행궁의 정궁(正宮)이다.

그런데 정조실록은 이후에도 ‘수원부’와 ‘화성부’를 거리낌 없이 뒤섞어 쓰고 있다. 하기는 ‘숭례문’이라는 표현이 보편화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남대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적지는 않다. 서울 관악구의 봉천동도 사라진 이름이지만, 지하철 2호선 봉천역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다르지 않다. 정조도, 사관(史官)들도 굳이 ‘수원’과 ‘화성’을 구분해 언급하고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수원 화성이라는 이름은 어색하게 들릴 수도, 어색하지 않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진짜 어색한 것은 하나의 역사문화권을 두 개로 갈라놓은 행정구역이다. ‘화성에는 화성이 없고, 동대문에는 동대문이 없다’는 말이 있다. 화성은 행정구역상 화성시가 아닌 수원시에 있고, 서울 사대문의 하나인 동대문은 동대문구가 아닌 종로구에 있기 때문에 생긴 우스개다.

정조가 화성 신도시를 만든 이유는 군사, 행정, 경제에 걸치는 만큼 단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아버지 사도세자,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진한 가족 관계도 축조의 상당한 이유가 되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화성은 수원시에, 짝을 이루는 정조와 그 부모의 무덤은 화성시에 있는 것은 역사는 역사, 현실은 현실이라는 것을 고려해도 부자연스럽다.

수원시와 화성시를 통합하자는 논의는 그동안에도 몇 차례 있었다. 최근에도 수원시와 화성시는 물론 오산시까지 합친 통합 논의가 있었지만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정치인들의 소(小)지역 할거주의 때문이겠지만 아쉬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통합을 이룬다 해도 통합자치단체의 이름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수원이나 화성 모두 역사성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2016 수원 화성 방문의 해’를 맞아 엊그제 이곳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화성은 단계적으로 정비가 이루어져 깔끔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관광객은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 보였다. 서울에서 가깝지는 않은 만큼 외국인 관광객은 하루를 꼬박 투자해야 화성을 둘러볼 수 있다. 그런데 수원 화성의 역사 자산은 물론 전통시장을 비롯한 문화 자산은 그 시간과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다양했다. 그럴수록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관광 도시’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는 ‘품격 있는 역사문화 도시’로 목표를 수정하기를 권하고 싶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6-06-2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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