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문회법’ 거부권 때문에 협치 포기해선 안 돼

[사설] ‘청문회법’ 거부권 때문에 협치 포기해선 안 돼

입력 2016-05-27 17:54
업데이트 2016-05-2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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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상임위원회가 소관 현안에 대해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상시 청문회법)에 대해 정부가 27일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재의 요구안을 의결했다. 아프리카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전자결재로 이를 재가했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지난해 6월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이어 두 번째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상시 청문회법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입법부가 행정부에 대해 새로운 통제 수단을 신설하는 것으로서 권력 분립 및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업무가 청문회 대상이 될 수 있어 행정부의 업무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번 거부권 행사는 상시 청문회법 시행으로 예상되는 부작용만 너무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청문회 개최는 정부 정책과 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국회의 고유권한이다. 이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국회의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지난 총선에서 청와대와 여당은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에 대해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았다. 여소야대 국회는 청와대와 국회, 여당과 야당의 협치를 바라는 민의의 결과물인 것이다. 거부권 행사는 이런 민의와 거리가 있다. 얼마 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에 이어 협치를 어렵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당장 야당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여당과 청와대의 반응이 졸렬하고 유치하다”고 날을 세웠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청와대 회동 뒤 보였던 협치 가능성이 계속 찢겨 나가고 있다”고 격하게 반응했다. 더민주는 19대 국회의 사실상 마지막 날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입법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회 본회의 개최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했다는 시각에서다.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상시 청문회법의 자동 폐기 여부에 대해선 여야의 시각이 엇갈린다. 우·박 원내대표와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상시 청문회법을 재의결하기로 합의했다. 반면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9대 국회에서 의결한 법안을 20대 국회에서 재의결하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다”며 불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국회 사무처는 “어떤 결정도 내린 바 없다”며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결국 여야는 20대 국회 시작과 함께 상시 청문회법 자동 폐기와 재의결 문제로 극심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이 문제로 시급한 민생 현안 처리에 발이 묶이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역대 최악이라는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마저 여야가 약속했던 협치는커녕 다투는 모습부터 보인다면 국민 불신만 커질 것이다. 다행히 우 원내대표는 상시 청문회법 문제가 원 구성 협상 등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신속한 원 구성과 함께 국회가 민생에 힘을 쏟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청문회법 하나 때문에 국민이 명령한 협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2016-05-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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