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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고령화와 고고학의 지혜/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고령화와 고고학의 지혜/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16-04-18 22:56
업데이트 2016-04-19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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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유명한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는 나이 40에 14살 연하였던 고고학자 맥스 맬로완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 이후 범상치 않은 그들의 결혼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부부는 ‘고고학자는 오래될수록 흥미를 더 느끼니 여자에겐 최고의 남편감’이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실제로 크리스티가 85세로 죽을 때까지 이 부부는 금실 좋게 살았다. 게다가 상대방의 일에도 큰 도움을 주었으니, ‘메소포타미아 살인사건’을 비롯한 그녀의 여러 추리소설에 고고학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들 고고학을 값진 보물을 캐는 직업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고고학에서는 유물보다는 유물이 놓인 위치, 즉 층위를 기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유물이 아무리 귀하다 한들 발견된 위치를 모른다면 그 유물을 만들어 낸 인간들의 역사를 제대로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들에게는 화려한 보물보다는 한 자리에서 살아온 수천 년 인간의 역사가 더 소중하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도 마치 고고학의 층위처럼 인생의 경험이 한층 한층 쌓여 가는 과정이다. 사람이 노화된다고 과거의 경험과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풀숲에 가려진 옛 유적처럼 그들의 지혜는 오히려 무의식의 저편에 묻혀 있다가 필요할 때에 발현되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언제나 늙은이의 지혜를 믿어 왔다.

그렇지만 전근대 사회에서 인간의 수명은 매우 짧았기에 늙어 가는 것은 극히 소수에게만 주어진 기회였다. 동북아시아에서 최초의 청동기시대인 4000년 전 하가점하층문화의 무덤 유적인 다뎬쯔에서 700여기의 무덤에 묻힌 인골을 분석한 결과 그중 40대 이상은 10% 이하였다. 문명의 발생 이후에도 여전히 늙어 가는 것은 운 좋은 소수만 가능했다. 인생 100세를 넘보는 지금의 고령화 사회는 지난 수백만 년의 역사에서는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경지다. 더욱이 의학의 발달로 수명뿐 아니라 지적인 능력도 계속 유지가 된다. 예전에는 진즉에 은퇴했을 법한 백발의 전문가들이 녹슬지 않은 전문적인 지식에 연륜을 더해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것을 그리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고고학의 층위처럼 쌓인 인간의 지혜와 경험이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늙어 가는 모습이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젊을 때 경험과 생각을 앞세우며 막무가내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는 일부 노년 세대도 있고, 반대로 늙은 세대가 자신들의 기회를 빼앗아 간다고 갈등의 각을 세우는 일부 젊은 세대도 있다. 이런 모순은 늙어감을 지혜의 축적보다는 생산성의 퇴보로만 생각하는 사회적 통념과도 관계 있다.

그러니 사람들은 늙음을 거부하려고만 한다. 동안 열풍도 결국은 쓸모없는 늙은이가 되기를 거부하려는 열망이 표현된 것이다. 흔히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원래 나이에 관계없이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라는 말이지만 요즘은 늙음을 거부하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사실 세상 모든 것을 바꾼다고 해도 나이는 바꿀 수가 없다. 매스미디어는 동안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경쟁적으로 비추어 주지만, 사실 수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노화를 늦추는 것일 뿐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길가메시도, 중국의 진시황도 찾지 못한 영원한 젊음의 길을 우리라고 찾을 수 있을까. 오히려 늙어감의 기쁨을 찾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100세 인생이라고 한다면 인생의 절반은 생식을 비롯한 육체적 그리고 사회적인 능력이 감퇴한 채로 산다는 뜻이다. 이 절반의 인생을 위해 물질적인 연금은 물론 노년의 지혜가 제대로 발휘되는 정신적인 연금을 쌓기 위해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지난 세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탈식민지, 민주화와 그리고 경제발전을 이룩해 왔다. 그 소중한 역사를 담은 세대들이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함께하며 그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앞날을 모색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축복이 아닐까. 유적의 층위 사이에서 인간의 역사를 찾아내면서 우리의 앞날을 모색하는 고고학의 지혜가 급격히 고령화되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시사점을 준다.
2016-04-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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