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참상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 별세

5·18 참상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 별세

입력 2016-02-02 11:15
수정 2016-02-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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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묻어달라’ 뜻 따라 손톱·머리카락 망월동 묘역 안장 예정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 별세. KBS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 별세.
KBS
5·18의 참상을 영상에 담아 전 세계에 알린 독일인 위르겐 힌츠페터씨가 향년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죽으면 광주에 묻어달라’고 밝힌 고인의 뜻에 따라 힌츠페터씨의 유해 일부가 담긴 항아리는 망월동 구 묘역에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2일 5·18 기념재단에 따르면 힌츠페터씨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각) 독일 북부의 라체부르크에서 오랜 질병 끝에 숨을 거뒀다.

2004년 5월 심장질환으로 갑자기 쓰러진 그는 병원 응급실에서 생명이 위독한 와중에도 가족들에게 광주에 묻히게 해달라는 말을 유언처럼 반복했다.

이후 힌츠페터씨는 우여곡절 끝에 건강을 회복했고, 광주시는 나중에 그가 사망하면 5·18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

2005년 광주를 다시 찾은 힌츠페터씨는 “벌써 25년이 흘렀다. 광주시민과 한국민들은 1980년 5월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힌츠페터씨는 자신을 가족묘에 묻고 싶어하는 가족들의 요구에 따라 손톱과 머리카락을 담은 편지봉투를 광주에 남기고 독일로 돌아갔다. 봉투는 5·18 기념재단이 보관하고 있다.

5·18 재단은 고인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망월동 묘역에 상징적으로 안장하는 방안을 5월 단체, 광주시 등과 논의할 예정이다.

고인은 5·18 당시 독일 제1공영방송 ARD-NDR의 일본특파원으로 광주의 상황을 현장에서 취재해 가장 먼저 세계에 알렸다.

그가 목숨을 걸고 광주 현장을 기록한 영상 자료는 군부독재의 폭압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37년에 독일에서 태어난 힌츠페터씨는 의사를 꿈꾸던 의학도에서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계기로 1968년 NDR의 영상기자가 됐다.

베트남, 캄보디아 등 아시아지역 뉴스현장을 누비다 1978년 일본 특파원으로 부임하면서 박정희 정권 치하의 사건들을 기록했다.

1980년 5월 19일 광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그는 한국으로 날아와 우여곡절 끝에 학살의 현장을 전세계에 전했다.

그의 필름은 독일 전역에 방송됐다. 같은 해 9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판결에 대한 항의 표시로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제목의 45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1980년 이후 전두환 정권의 폭압상을 널리 알려오던 힌츠페터씨는 1986년 서울 광화문 시위 현장에서 경찰에게 맞아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기도 했다.

1995년 기자직에서 은퇴한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현장을 지켰던 치열한 기자정신이 국민의 양심을 깨워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공로로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기봉 5·18 기념재단 사무처장은 “독일 교민으로 조문단을 꾸려 고인의 가족을 위로할 것이다”며 “광주에서 진행할 추모행사는 시와 협의해서 계획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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