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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대학평가의 어두운 그늘/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대학평가의 어두운 그늘/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2015-11-04 18:26
업데이트 2015-11-0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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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학의 구성원인 학생, 교수, 교직원은 모두 평가를 받고 있다. 학생은 성적으로, 교수는 강의와 연구 업적으로, 교직원은 업무 역량으로 평가를 받는다. 이들이 움직이는 대학 자체도 ‘대학평가’를 받는다. 평가 기준이 명확·타당하고, 평가 방법이 공정하고, 평가의 효과가 낙오자를 끌어올릴 수 있을 정도로 미래지향적이라면 평가에 의해 사람, 조직, 사회, 국가는 크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평가를 하는 국내외 기관이 너무 많고 평가 기준도 제각각이다. 또한 같은 기관이 평가한 결과마저도 해마다 다르고, 다른 기관의 평가 결과와도 큰 차이가 있어 평가의 신뢰성을 찾기 어렵다.

원래 대학평가는 미국과 유럽에서 지역적으로 광범위하게 산재해 있는 수많은 대학을 일일이 방문할 수 없는 학생과 학부모가 대학을 선택할 때 필요한 정보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처럼 국토 면적이 넓지 않은 나라에서 순위 경쟁을 위해 대학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순위 경쟁을 위해서는 평가 기준(평가지표)이 있어야 하며, 이를 계량화해야 한다. 계량화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그레셤의 법칙(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이 적용된다는 것이 경험칙이다. 가령 대학의 국제화 기준으로 외국인 유학생 수를 기준으로 했더니 대거 중국인 유학생 유치 경쟁을 벌였던 꼴이다.

또한 교육부의 특성화 지원 사업, 교육역량 강화 지원 사업 선정 기준의 하나로 영어 강좌의 개설 수로 했더니 강좌 수만 늘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콩글리시 또는 한국어로 진행하는 일도 벌어진 것이다. 이래서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대학의 연구력 평가에서도 SCI 등 연구논문 수나 연구비 수주액, 특허 출원 수 등 순위 경쟁을 위한 연구 결과물의 양산을 위해 연구실과 실험실조차 “빨리빨리”를 외쳤고, ‘따라 하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대학평가가 이루어진 과거 21년 동안 한국의 대학은 양적으로 성장해 왔지만 학문적으로는 남는 것이 없는 허공의 나날이었다. 세계 대학의 랭킹이 상승했지만 교육을 통해 미래를 선도하는 창의적인 인재의 양성과 연구를 통해 사회 발전과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자는 대학의 역할은 공염불이 된 것이다. 매년 수시로 발표되는 언론사의 대학평가 순위가 대학 총장의 ‘성적표’로 작용함에 따라 총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평가지표 관리’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투자해야 할 자원과 인력이 엉뚱하게도 ‘보이기 위한 지표관리’를 위해 낭비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주요 대학들이 US뉴스 & 월드리포트의 대학순위 평가에 반대하고 있는 이유는 대학 교육에서 그레셤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과학부문 21명의 노벨상을 배출한 일본에서는 아사히신문이 대학평가를 하고 있지만, 우리처럼 대학 랭킹을 1면 톱으로 다루지 않는다.

도쿄·게이오·와세다대 등의 세계 대학 랭킹이 떨어져도 원인이 국제화 수준의 문제라고 알고 있지만, 이를 주의 깊게 지켜볼 뿐이다.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문부성이나 대학 당국은 이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정책을 수행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교수 채용에서 외국 대학의 학위를 선호하지 않는 일본 대학들의 자부심과 자생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립대학은 입시철에 한정해 대학 소개를 공동으로 할 뿐 우리처럼 수시로 특정 대학이 전면광고를 하는 일은 없다. 대학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의 언론기관들이 대학평가가 대학 간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교육여건의 개선과 국가 경쟁력의 근간인 대학 연구력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대학의 특성을 무시한 순위 경쟁을 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대학평가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어떤 요소와도 결별하는 용단을 보여야 할 것이다. 특히 언론사의 대학평가와 대학의 광고비 지출의 관련성이 있다고 비판을 받는다면 대학평가를 하는 언론사들은 대학으로부터 광고를 수주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평가의 공정성은 평가기관에 더욱 엄격하게 적용돼야 하며, 공정성의 시비가 발생한다면 대학평가는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2015-11-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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