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서해상 어선 2척 피랍… 25명 납북

1972년 서해상 어선 2척 피랍… 25명 납북

문경근 기자
문경근 기자
입력 2015-10-25 23:02
업데이트 2015-10-2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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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어부 정건목씨 ‘오대양호 사건’

25일 금강산호텔에서 그리운 어머니와 개별 상봉을 가진 정건목(64)씨는 43년 전 ‘오대양호 사건’으로 납북된 어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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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시작된 2차 이산가족 북측 상봉단에는 1972년 ‘오대양호 사건’ 때 납북된 어부 정건목(동그라미 안·64)씨가 포함돼 남측에서 온 어머니와 43년 만에 만났다. 오대양호 사건은 1972년 서해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쌍끌이 어선 오대양 61호와 62호가 북한 경비정에 납치된 사건이다. 사진은 오대양호 선원들이 납북된 이후 북한 묘향산에서 찍은 단체사진. 납북자가족모임 제공
지난 24일 시작된 2차 이산가족 북측 상봉단에는 1972년 ‘오대양호 사건’ 때 납북된 어부 정건목(동그라미 안·64)씨가 포함돼 남측에서 온 어머니와 43년 만에 만났다. 오대양호 사건은 1972년 서해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쌍끌이 어선 오대양 61호와 62호가 북한 경비정에 납치된 사건이다. 사진은 오대양호 선원들이 납북된 이후 북한 묘향산에서 찍은 단체사진.
납북자가족모임 제공

오대양호 사건은 1972년 12월 28일 서해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쌍끌이 어선 오대양 61호와 62호가 북한 경비정에 납치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정씨(당시 21세)를 포함한 어부 25명이 북한으로 끌려갔고 이후 이들의 생사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2013년 9월 선원 전욱표씨가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돌아오면서 다시금 여론의 관심을 받았다. 오대양호 선원 중 귀국에 성공한 것은 전씨가 처음이었다.

전씨는 애초 오대양호 납북 선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2005년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오대양호 선원 등 납북된 어부 37명이 1974년 북한 묘향산에서 찍은 사진을 입수하면서 2010년 납북자로 인정됐다.

앞서 2005년 북한적십자사의 통보로 오대양호 선원 박두남씨가 사망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진행된 제19차 이산가족 상봉에서는 오대양호에 탔다가 납북된 박양수씨가 남측 동생 양곤씨를 만났다.

정부는 6·25전쟁 이후 아직 귀환하지 못한 국군 포로·납북자가 5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현재까지 생사가 확인된 국군 포로와 납북자는 93명에 불과하며 이 중 35명만이 가족과 상봉했다.

납북자는 1987년 서해 백령도 근해에서 북한에 끌려간 ‘동진 27호’ 갑판장 강희근씨가 2000년 11월 제2차 이산가족 상봉 때 어머니를 만난 것을 시작으로 특수 이산가족 형태로 2~3명씩 상봉 행사에 참여해 왔다. 이후 1977년 납북된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인 김영남씨, 1969년 12월 납북된 대한항공 여승무원 성경희씨 등이 남측 가족을 만났다. 국군 포로는 2000년부터 모두 12명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여했는데 이번 상봉에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2015년 7월 현재 80여명의 국군 포로가 북한을 탈출해 귀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2015-10-2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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