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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치른 딸이 새벽에 찾아와 치마속 거울 비춰보니…

장례 치른 딸이 새벽에 찾아와 치마속 거울 비춰보니…

입력 2015-10-21 17:41
업데이트 2015-10-2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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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딸이 7개월 만에 친정나들이…“귀신 왔다” 거울도 비쳐보고 온동네 법석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71. 죽은 딸이 7개월 만에 친정나들이…“귀신 왔다” 거울도 비쳐보고 온동네 법석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71. 죽은 딸이 7개월 만에 친정나들이…“귀신 왔다” 거울도 비쳐보고 온동네 법석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71. 죽은 딸이 7개월 만에 친정나들이…“귀신 왔다” 거울도 비쳐보고 온동네 법석 (선데이서울 1973년 4월 15일)
마을 공동묘지에 묻었던 여인이 살아 돌아왔다. 온 마을이 “귀신 나왔다”고 혼비백산했고 가족들은 “얼마나 원통했길래 귀신으로 왔느냐”며 방성대곡. 그러나 여자는 틀림없는 멀쩡한 육신이었다.
4월 1일 새벽 5시. 전남 무안군 무안면 교촌리 3구 김하균(62)씨 댁은 어두컴컴 여명 속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 아버지”하며 김씨를 찾는 목소리를 들어보니 어랍쇼, 마을 뒷산 공동묘지에 묻었던 딸 김부자(32·서울시 영등포구 양재동)여인의 목소리가 아닌가?
가족들은 소름이 쫙 끼쳤다. 불쌍하게 죽은 딸이 얼마나 원통했으면 귀신이 되어 새벽 5시, 자기 친정을 찾아왔으랴?
시간도 너무나 정확하게 똑같다. 그러니까 72년 9월 9일 새벽 5시. 느닷없이 사립문 밖에 차 멎는 소리가 들리더니 벌써 시체가 된 딸이 들이닥쳤다.
전날인 8일, ‘김부자 위급급상’이란 전보가 날아 들어온지 불과 8시간밖에 되지 않아서…. 모두들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했다. 자기가 시체가 되어 친정집 사립문을 들어섰던 그 새벽 5시에 1분도 틀리지 않게 그녀는 원혼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다. 김여인의 어머니 박(59)여인이 간신히 정신을 차려 나갔다. 가족들도 뒤따랐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립문의 빗장을 열자 생시인 듯 꿈인 듯 김여인이 웃으며 걸어들어 왔다. “에구머니”하며 박여인이 기절해 쓰러지고 다른 가족들도 마당에 주저앉았다.

●질겁한 가족들 기절까지…경찰 불러 신분 확인하고
이번엔 귀신(?) 김여인이 어리둥절했다. 오랜만에 친정나들이를 한 딸을 보고 친정식구들이 얼굴이 하얘서 법석인 것이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저예요”하고 달려들자 모두 질겁하며 물러섰다. 다시 다가서면 또 뒷걸음질 쳤다. 화도 내보고 “나 부자예요”하며 소리소리 쳤지만 어느 누구도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았다.
날이 밝자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200여 호쯤 되는 이 마을 주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모두가 귀신 구경한답시고 몰려들었다. 마당과 담너머로 수백 명 인파가 몰려들고 방 문턱에는 김여인이 걸터앉아 있었다. 식구들은 약간 떨어져 아직도 귀신임을 확신하며 멈출 줄 모르는 울음을 계속하고 있었다. 누군가 재빠르게 알려 지서의 경찰관 2명이 도착했다. 시간은 아침 7시쯤.
“귀신은 거울에 비치지 않으니 거울에다 비쳐보자”, “귀신은 허벅다리가 없다고 하니 치마를 걷어 올려보라”는 등, 김 여인의 신분 구별방법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하여 진기한 귀신판명 실험으로 거울이 비춰졌다. 틀림없이 김여인의 얼굴 모습이 나타났다. 치마를 걷어 올리자 허연 속살이 나타났다. 함성이 일어났다. 비로소 가족들이 달려들어 얼싸안고 뒹굴며 소리 높여 울었다.
긴장과 공포 속에 2시간 동안 온 동네가 수라장이 된 이 귀신소동의 전말은 6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김여인은 66년 자택에서 김부길(34)씨와 구식결혼으로 백년해로의 식을 올렸다. 서울에서 자가용차 운전사로 있는 김씨는 아내와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살다가 72년에 현재의 영등포구 양재동(지금은 서초구)으로 이사했다. 살림이 구차한 김씨는 72년 초에 처가에서 10만원을 빌어다 쓴 일이 있었다. 이 돈을 갚지 못해 괴로워했던 김씨는 아내에게 “처가에 일절 편지를 내지 말라”고 강요, 이 바람에 양재동으로 이사한 뒤부터 소식이 끊겼다. 게다가 김씨는 71년도 8월에 어느 술집여자와 바람을 피웠다가 들통이 나서 아내와 대판 싸움을 벌인 일이 있었다. 이 바람 피운 소식은 김여인의 하소연으로 친정식구들도 잘 알고 있던 얘기.
시집 간 딸의 언짢은 소식에 대한 궁금증이 채 가시지 않은 72년 9월 8일의 일이다. 이날 김씨 집안은 느닷없이 발신자도 없는 ‘김부자 위급급상’이란 전보를 받았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5시에 시체가 들이닥쳤다. 시체를 싣고온 사람은 청주시 북문동 1가 24의1 S여인숙 주인 봉수길(28)씨. 그외에 이금옥(26)여인과 운전사 등 3명. 싣고 온 차는 충북영 1-1058호 코로나 택시 였다. 봉씨는 “서울 사는 딸이 있는가”하고 가족들에게 물었다. “있다”고 대답하자 “이 시체가 당신네 딸이 틀림없다면 시체를 내려놓겠다. 그리고 운구비 1만원을 내 놓으라”고 했다.
전보까지 받은 김씨 가족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모두들 통곡하느라고 수라장.

●죽은 여인은 이웃마을 동갑인 동명이인
더구나 시체의 등을 벗겨본 김여인의 어머니는 등의 점을 발견하고 “틀림없이 내 딸이구나”하며 땅바닥에 뒹굴었다. 봉씨 등은 “4개월 전 김여인이 여인숙에 투숙했다. 얼마 전 어떤 남자가 자고 간 뒤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다 죽어가게 됐다. 주민등록증을 보고 고향에 가서라도 임종하게 해주려고 싣고 오다가 광주 부근에서 죽었다”고 말한 뒤 돈 1만원을 받고 돌아갔다.
집안에선 사위가 바람을 피웠다고 하더니 딸이 홧김에 서울을 떠나 청주에서 죽은 것으로 단정하고, 장사를 지냈다. 당장에 서울로 올라가 사위를 요절내자고 했지만, 아버지 김씨가 또 살인이 난다면서 말렸다. 큰사위 안해춘(44)씨가 시체를 살핀 결과 전신에 타박상이 있다면서 타살된 것 같다고 제법 침착한 발언. 이에 따라 억울하게 죽은 딸의 사인을 밝혀달라고 김씨네들은 청주 경찰서장 앞으로 탄원서를 냈다.
그러나 회신은 “병사한 것이지 타살은 아니다”라는 것.
그 뒤에도 10여 차례 탄원서를 내며 수사기관이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 줄 것으로 기대하며 어느덧 6개월여가 지나갔던 것이다.
한편 김부자 여인은 지금까지 멀쩡하게 남편과 양재동에서 살다가 오랫동안 편지 한 장 못했기 때문에 야간급행을 타고 새벽에 내려 잠시 친정에 다녀가기 위해 왔다가 한바탕 귀신소동을 벌였던 것.
그럼 정작 시체 주인공은 누구일까? 틀림없이 시체도 김부자로서 72년에 29살. 청주 중앙시장 윤락가에서 윤락생활을 해 오던 여인이었다.
청주에 오기 전엔 서울에서 살았다는 것. 죽은 김여인도 살아있는 김여인과 마찬가지로 무안면 교촌리 태생이며 서로 불과 5리쯤 떨어진 마을. 죽은 김여인의 행적은 7년 전 전북 정읍으로 이사 간 사실 외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봉씨 등은 시체를 싣고 새벽에 도착하여 동네사람에게 무조건 “김부자씨 친정이 어느 집이냐”고 물었고, 그래서 간 곳이 김하균씨집. 공교롭게도 두 김여인은 키와 얼굴모양이 거의 비슷했고 시체도착, 김여인 도착 시간이 너무도 똑같아 귀신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세상을 두 번 살게 됐다”면서 자기가 묻혀 있는(?) 무덤을 가리키며 산 김여인은 오래 살게 되었다고 함빡 웃었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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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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