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 탐지 못하는 구조함·뚫리는 방탄복… 이름만 첨단무기

수중 탐지 못하는 구조함·뚫리는 방탄복… 이름만 첨단무기

김양진 기자
입력 2015-10-16 22:36
업데이트 2015-10-1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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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비리에 구멍 난 차세대 신무기 사업

군의 무기체계 도입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비리를 밝혀내기 위해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이 출범한 지 다음달로 1년이 된다. 그동안 방탄복·소총 같은 개인장비부터 잠수함·헬기 등 첨단 무기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부정부패가 속속 실체를 드러내며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지금까지 66명이 비리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 정옥근(63) 전 해군참모총장 등 전·현직 장성 10명을 포함한 군인이 40명에 이른다.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도 50여명을 헤아린다. 우리의 영토와 영공, 영해를 지키는 든든한 수호자가 되지 못한 채 국민 세금이 허투루 쓰인 표상으로 전락하고 만 방산 비리 연루 무기들은 어떤 것들이었는지 16일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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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함의 자랑 ‘소나’ 알고 보니 어군탐지기
가장 먼저 수사선상에 올랐던 무기는 최첨단 수상구조함(ATSII)이라던 해군 통영함이었다. 우리 기술로 제작된 첫 구조함으로 2010년 10월 건조에 들어가 2012년 9월 경남 거제 대우해양조선 옥포조선소에서 진수됐다. 1590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해군은 1996년 미 해군이 사용하던 구조함 2척(평택함·광양함)을 300억원에 인수해 사용해 왔다. 하지만 고성능 ‘소나’(음파탐지기) 등 전문 수중 탐지장비가 없어 선체 수색엔 어선의 어군탐지기를 동원해야 했다. 통영함의 수중 탐지장비는 물밑의 물체 탐색이 가능해 전시 수중 기뢰 등을 찾아내 제거할 수 있는 조건으로 납품됐다. 그러나 감사원과 합수단 등 조사 결과 통영함 음파탐지기 성능은 고작 물고기 잡는 데 쓰이는 정도로 1970년대 기술 수준이었다. 원가도 방위사업청이 지급한 41억원에 훨씬 못 미치는 2억원대였다.
해군은 음파탐지기 관련 장비가 성능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인수를 거부했고 그 결과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때 투입이 무산됐다. 이와 관련해 전·현직 장성 등 14명이 구속 기소됐다.


●해상헬기 ‘와일드캣’ 어뢰 한 발밖에 못 실어
김양(62) 전 국가보훈처장 등 8명이 도입 과정의 비리로 구속 기소된 해상작전헬기의 이름은 ‘와일드캣’(AW159)’. 약 6000억원을 들여 적 수상함과 잠수함에 맞서 작전을 펼 수 있는 헬기 8대를 올해와 내년에 걸쳐 구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형편없는 성능 탓에 인수가 불투명해졌다.
와일드캣은 현재 해군에서 운용하는 ‘링스’ 헬기의 후속 모델이지만 실제로는 대함·대잠 작전 투입이 불가능한 상태다. 광범위한 해상을 탐색하려면 ‘디핑 소나’(수중 음파탐지기)와 ‘소노부이’(부표형 음파탐지기) 등의 장착이 필수적이지만 헬기의 추진 동력이 약해 무거운 소노부이는 아예 싣지도 못할 정도다. 체공 시간은 요구 조건의 50%에도 못 미치는 79분에 불과했고 어뢰도 단 한 발만 장착이 가능하다.
2012년 구매 시험평가를 하기 위해 제작사가 있는 영국까지 평가팀이 파견됐지만 육군용 헬기에 실제 장비 대신 모래주머니를 채워 시험비행을 하는 것만 보고 ‘요구 성능 100% 충족’이라고 하는 등 엉터리 평가를 한 것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아군 피해만 입힌 ‘K11 복합소총’
육군에도 부실한 무기가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사례는 특수전사령부에 보급하겠다던 ‘K11 복합소총’과 ‘다기능 방탄복’이다. K11 복합소총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2000년부터 8년 동안 185억원을 들여 개발했다. 5.56㎜ 자동소총과 20㎜ 공중 폭발탄 발사기가 결합됐다. 레이저 거리 측정기를 이용해 조준점을 잡으면 마이크로프로세서가 거리를 탄환의 회전수로 환산해 적의 상공에 공중 폭발탄을 터뜨리는 무기다.
1정의 가격이 무려 1530만원. 그러나 2011년 10월 야전 운용성 확인 사격 중 20㎜ 공중 폭발탄이 총기 내부에서 터져 병사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조사 결과 핵심 장비인 사격통제장치에 문제가 있었다. 충격시험 장비의 재질과 센서 위치 변경으로 실제 사격 시 충격량의 30% 정도만 주는 방법으로 품질 검사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대전차 무기 ‘현궁’ 부실 평가로 수사선상에
휴대용 중거리 대전차 유도무기로 내년에 육군에 배치할 예정이던 ‘현궁’ 역시 비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스라엘 ‘스파이크’ 미사일 등을 참고해 개발이 추진돼 대전차, 대엄폐호, 대헬기 공격을 목표로 했다. ADD가 개발을, LIG넥스원이 생산을 맡았다.
합수단은 일부 성능시험 장비에 문제가 있는데도 ADD가 합격 판정을 내린 정황을 포착했다. 현궁의 파괴력을 측정하는 내부 피해계측 장비에 일부 부품이 빠져 작동할 수 없는데도 ADD는 ‘작동 상태 양호’라며 합격 판정을 내린 것으로 합수단은 보고 있다.
●다기능 방탄복은 북한 소총에 관통
가슴뿐 아니라 목, 어깨, 낭심 부분의 방탄 기능을 더한 ‘다기능’을 내세우며 특전사에 2000여벌이 납품된 ‘특전사 방탄복’은 최소한의 성능 기준도 충족하지 못했다. 북한군의 신형 개인화기인 ‘AK74 소총’ 탄환에 힘없이 뚫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군 납품 실적 등이 모두 허위로 작성됐지만 방사청 소속 장교들은 이를 적발해 내기는커녕 방탄복에 대한 부대 운용시험에서 ‘부적합’ 결과가 나왔음에도 이를 빠뜨리고 보고서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군 훈련장비 국산화… 연구·개발은 0%
공군의 비리로는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 납품 대금 편취가 대표적이다. EWTS는 조종사의 안전을 위해 대공미사일 회피 방어·훈련을 하는 장비다. 국방부는 1997년 북한의 지대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EWTS를 수입하기로 했다.
총사업비 1101억원의 절반 정도가 기술의 국산화 연구·개발(R&D)에 쓰이는 것을 전제로 사업이 추진됐다. 하지만 실제 연구·개발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무기중개상 이규태(65) 일광공영 회장이 비리의 중심에 있었다.
아직 합수단의 수사 대상은 아니지만 개발비용 8조 5000억원, 양산비용 9조 6000억원 등 전체 사업비가 18조원을 넘는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 사업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애초 우리 정부는 미국의 최신예 전투기 ‘F35’를 도입하면서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으로부터 KFX 사업에 필요한 기술을 이전받기로 했다. 그러나 위상배열 레이더, 적외선 탐색추적장비 등 4개의 핵심 기술은 미국 정부가 기술 보호를 이유로 수출 승인을 거부했다.
지난해 9월 방사청이 록히드마틴과 F35 도입 계약을 체결하면서 “기술이전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합의각서에 따라 항공기 제작사에 이행보증금을 몰수하겠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이 핵심 기술 4건에 대해선 이행보증금을 면제해 준 것으로 드러나 청와대가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2015-10-1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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