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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숲의 정기, 피톤치드의 비밀/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열린세상] 숲의 정기, 피톤치드의 비밀/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입력 2015-09-13 23:12
업데이트 2015-09-13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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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전 국립산림과학원장
9월이 되자 아침저녁으로 하루가 다르게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가을이 반가운 건 우리를 힘들게 했던 더위 탓이다. 이번 여름도 무척이나 더웠다. 며칠씩 계속되는 열대야로 도시민들은 잠을 못 이루었다.

무더위를 피해,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숲으로 떠났다. 숲 속으로 들어가니 무척이나 시원했다. 이것은 무성한 나뭇잎이 따가운 햇볕을 막아 기온을 낮춰 준 데다 숲 속의 나무와 풀들이 수분 증산 작용을 통해 열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니 상쾌함까지 느껴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숲이 가진 자연의 소리와 아름다운 경관, 음이온, 그리고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끼는 상쾌함의 일등 공신이 바로 피톤치드다.

‘피톤치드’(phytoncide)는 ‘식물’을 의미하는 ‘phyto’와 ‘죽인다’는 뜻을 가진 ‘cide’의 합성어다. 이는 ‘식물에 의해 박멸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러시아의 생화학자 보리스 토킨 박사가 1928년에 만들어 낸 말이다.

그는 식물들이 썩거나 곤충과 동물에게 먹히지 않도록 자신을 방어하는 활성 물질을 내뿜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피톤치드는 ‘식물에 함유돼 있는 물질로서 식물의 번식이나 생장 등 외부 환경에 영향을 주는 모든 식물 분비물질’을 총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푸른 생명력이 넘실대는 숲으로 들어가면 상쾌한 공기와 풋풋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누구나 숲 속에서 명상을 하거나 산책할 때 스트레스가 풀리고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이런 효과가 있는 향기의 정체가 바로 피톤치드다. 물론 숲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는 ‘숲의 향기’라고 말하더라도 느낌이 와 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숲의 향기인 피톤치드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향료’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생활에 늘 함께 존재했다.

고대에는 향료를 주로 종교행사, 질병 치유 및 악령 퇴치에 사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기원전 150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향료를 신전에 바치거나 향로에서 태웠다는 기록이 있고, 기원전 2000∼1500년경 중국 하(夏)나라 시대 종교의식에 향료나 향주(香酒)가 사용됐다는 ‘신농본초경’의 기록 등이 그 예라 하겠다.

이와 같은 역사에서 출발해 향료는 향목(香木)이나 수지(樹脂)를 주체로 하는 분향식 향료에서부터 휘발성이 강한 식물 향만을 추출한 정유(精油) 형태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향초(香草·허브)나 꽃 향 등을 원료에 첨가하면서 점차 범위를 넓혀 오늘날의 향료(perfume)로 발전한 것이다. 특히 식물에서 추출한 휘발성 물질인 피톤치드는 용도에 따라 일반적으로 화장품, 향수, 목욕용품 등에는 프레이그런스(fragrance), 퍼퓸(perfume)으로, 식품에는 플레이버(flavor)로 불린다.

피톤치드는 우리들의 몸을 건강하게 해줄 뿐 아니라 심신의 안정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와 아토피 치료 등에 도움을 주며 항균, 방충, 소취(消臭) 등 다양한 기능을 한다. 고작 나무 향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숲과 나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다. 이것을 숲의 정기(精氣)라 해도 좋을 것이다. 피톤치드를 삶 속으로 끌어들여 잘 활용한다면, 우리의 생활은 더욱 건강하고 윤택해질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산림 식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향료 자원을 발굴하고 식물 정유의 용도를 다양하게 개발하기 위한 종합적인 연구를 추진한다고 한다. 이를 기반으로 식물의 잎, 뿌리, 줄기, 껍질 등에서 추출한 식물 정유 자원을 확보해 연구 소재로 공급할 수 있는 산림 식물 정유은행도 설립한다고 한다.

산림과학원의 노력이 화장품, 의약품, 기능성 식품, 생활용품, 향료 등 관련된 산업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것이 창조농업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다.
2015-09-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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