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사태의 교훈-기업도 변해야 산다] <중> 주주친화 기업문화 만들라

[엘리엇 사태의 교훈-기업도 변해야 산다] <중> 주주친화 기업문화 만들라

백민경 기자
백민경 기자
입력 2015-07-19 23:04
업데이트 2015-07-19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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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 온 페이·주주협의회 등 제도 도입 필요하다”

2011년 5월 지역통신사업자인 ‘신시내티 벨’은 주주총회에서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의 보수를 70% 이상 올리는 안을 상정하고 주주권고 투표를 진행했다. 이 투표는 미국 금융개혁법 제951조에 따라 도입된 이른바 ‘세이 온 페이’(Say on Pay) 제도에 근거한 것이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주주들이 이사 보수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이다. 신시내티 벨의 주주들은 보수 인상안에 거세게 반발했다. 2010년 회사의 순이익과 주주 이익이 전년에 비해 각각 68.4%, 18.8% 떨어져서다. 66%의 주주가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회사 측은 인상을 강행했다. 그러자 주주인 NECA-IBEW 연기금은 배임 및 부당이득 혐의로 CEO와 이사회를 상대로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했다. 그해 9월 오하이오주 남부연방지방법원은 “객관적으로 보수를 심사하고 판단해야 할 이사들이 (보수 인상안을) 승인·상정한 주체라는 점에서 객관성이 떨어진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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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미국 기업 주주들의 위상이다. 미국은 주주들이 이사회 보수까지 제동을 걸며 법적 공방도 불사한다. 미국 내 중견기업과 대기업 179사를 대상으로 이뤄진 타워 왓슨의 설문조사에서 32%의 기업이 ‘주주권고 반대투표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임원보상 계획을 변경했다고 답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주주들은 이익이 침해당해도 제대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최상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주주 친화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얻으면 경영진 교체를 시도할 일도, 그들의 결정에 반기를 들 일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이제 우리 기업들도 주주 친화적으로 변해야 한다”면서 “대기업의 12개월 선행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이 안 될 정도로 형편없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장부가치만큼도 주가가 형성되지 않아 주주들의 불만이 팽배하다”고 황 회장은 지적했다.

외국은 세이 온 페이 제도처럼 꼭 법적 수단이 아니더라도 주주와 소통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문화가 잘 조성돼 있다. 우리나라와 출발선부터 다른 셈이다. 주주의 요구를 ‘경영권 개입’이 아닌 ‘주주와의 소통’으로 받아들인 사례로는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인 애플이 있다. 주요 기관투자가이자 ‘기업 사냥꾼’으로 악명 높은 칼 아이칸은 경영진에 자사주 매입을 요구했다. 애플의 매출이 급격히 늘며 쌓인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겨냥한 것이다. 기업이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하면 그만큼 주식 유통량이 줄어들어 주가를 부양하는 효과가 난다. 오른 주가만큼 주주들에게 현금을 나눠 주란 뜻이다.

얼핏 보면 지나친 경영 간섭으로 볼 수 있지만 애플 경영진은 유보금에 대한 명확한 계획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결국 주주들의 의견을 수용했다. 사실상 주주에게 기업 성과가 돌아간 셈이다. 한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는 “얼마 전 어떤 상장사 대표를 만났는데 ‘주주는 회사의 주식을 잠시 소유하는 것이니 경영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안 된다’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엘리엇이 단기적 차익만 노리는 투기자본이라고들 하지만, 애플이 아이칸을 인정한 것처럼 엘리엇 역시 주주 권리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주주 이익을 대변하려면 이사회의 경영진 견제 기능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느냐도 중요하다. 박경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우선은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돼야 하지만 사외이사 권한 강화나 CEO 승계 프로그램만으로는 지배구조 선진화를 이루기 힘들다”면서 “궁극적인 해결책은 주주협의회”라고 제안했다.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주주협의기구를 운영하면 ‘대리인 문제’(대리인인 경영진이 주인인 주주 이익보다는 자신이나 회사 이익을 우선시하는 문제)가 사라지는 등 주주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모든 방법에 우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웨덴은 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위원이 주요 지분을 가진 주주다. 주주가 경영진을 견제하고 주주 간 견제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대리인 문제나 특정 주주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 상법에서도 0.5%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대형 상장사 주주는 사외이사를 추천할 수 있다”면서 “주주 권리가 보장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이나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기업 저항 등으로 사용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다중대표소송제’ 필요성도 언급한다. 이는 모(母)회사 주식을 일정 비율 이상 보유한 주주가 불법 행위를 저지른 자회사 혹은 손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자회사 경영진의 위법 행위로 자회사에 손해가 발생하고 주가를 떨어뜨려 저가에 주식을 매입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은 “주총을 일괄적으로 3월 둘째주나 셋째주에 몰아서 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기업이 진정으로 주주와 소통하고 싶다면 충분한 시간을 들여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이해관계자를 의결권 행사에서 제외한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나마 현대차가 투명경영위원회를 만들고 삼성물산이 거버넌스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한 것 등은 다행”이라면서 “주주 친화 경영을 좀 더 강화하고 지배구조 관련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2015-07-2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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