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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시선의 충돌/김재원 KBS아나운서

[문화마당] 시선의 충돌/김재원 KBS아나운서

입력 2015-07-01 17:56
업데이트 2015-07-0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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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KBS 아나운서
김재원 KBS 아나운서
교통사고가 있었다. 갑자기 내 차로 뛰어든 어떤 남자가 차 앞에 쓰러져 있었다. 얼른 내려서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한사코 마다했다. 여러 번 설득한 끝에 명함과 약간의 돈을 건네주며 문제가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당부하고 자리를 떠났다. 얼마 후 경찰서에서 뺑소니 운전 용의자로 소환 통보를 받았다.

연극 ‘그날의 시선’의 시작이다. 사고 당시 남편 옆에 앉아 있던 아내의 이야기는 남편과 다르다. 교통사고가 있었다. 남편의 거친 운전으로 한 남자가 쓰러졌고, 남편은 그에게 적절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결국 아내는 피해자를 찾아가 사과하고, 그녀를 멀리하는 그를 계속 만나다가 남편에게 받지 못한 위로를 얻는다. 피해자의 증언은 또 다르다. 교통사고가 있었다. 갑자기 달려든 차에 치여 쓰러진 자신이 굴욕감을 느낀 이유는 차에 앉아 있던 아내의 시선이었다. 남편에게 받은 돈을 경비실에 맡기고, 찾아온 아내의 사과도 받지 않았지만 그는 다시 새로운 욕망을 느끼고 자신이 아내를 성폭행했음을 자백한다.

모처럼 찾은 대학로 연극에서 나는 생각의 기회를 얻었다. 동일한 사고를 경험한 세 사람의 관점 차이는 합일점을 찾지 못한다. 두 경찰의 다른 시선 또한 초점을 흔들고 수사는 미궁에 빠진다. 100분 동안 다섯 사람의 개성 있는 연기와 좁은 무대의 탁월한 활용에 감탄을 연발했다. 교통사고 순간마저 감각적으로 표현한 연극 ‘그날의 시선’은 바람 같은 여운을 남긴다. 옷을 벗고 물러나는 경찰의 마지막 말이다. 인생은 살다 보면 등 뒤에서 바람이 불어오곤 하는데 우리는 그 바람을 볼 수도, 알 수도, 어떻게 할 수도 없지만 그 바람은 우리를 어디론가 훌쩍 데려다 놓는다는 고백이 우리 인생이 결코 통제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 준다.

지난봄 같은 주제의 세 편의 영화가 있었다. ‘일리노어 릭비’라는 사람 이름의 제목 뒤에 각각 그 남자, 그 여자, 그들이라는 꼬리말을 달았다. 2개월 된 아기가 죽은 후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각자의 시선에서 처리한 작품이다. 상처받은 감정을 처리하는 남자와 여자의 시선은 다르다. 일단 상영 시간부터 달랐다. 남자의 시간과 여자의 시간의 체감 길이는 분명 다른 모양이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두 사람이 이별을 선택한 후 회복 과정에서 여자는 많은 사람과 함께했고, 남자는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여자는 아이를 더 그리워했고, 남자는 여자를 더 그리워했다. 남녀의 시선의 차이는 부부가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 기적임을 보여 준다.

시선의 충돌은 일상이다. 이미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는 시선의 충돌을 경험했다. 정부와 유족, 국민은 서로의 온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아프다. 메르스 사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적절한 대처에 성공했다는 정부와 억울한 죽음과의 사투와 답답한 세월을 보내야 했던 환자와 격리자들, 24시간을 격렬한 노동과 공포에 시달린 의료업 종사자들, 내수 위축으로 손해를 본 자영업자들, 불안과 공포와 분노를 삭여야 했던 국민의 시선, 시선의 충돌은 나라를 흔들었다.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다른 길을 걸어온지도 모르겠다. 다양성의 시대에 다른 시선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과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의 차이는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같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고 서로 다른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시선의 충돌은 우리의 현실이다. 각자의 입장에 공감하고 충돌을 해결해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진짜 지도자의 힘이다.
2015-07-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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