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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척하지 않는 슬픔…터져 나오는 민초의 힘

슬픈 척하지 않는 슬픔…터져 나오는 민초의 힘

김소라 기자
김소라 기자
입력 2015-07-01 17:48
업데이트 2015-07-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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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조정래 원작 ‘아리랑’ 뮤지컬로 올리는 극본·연출 고선웅 인터뷰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47)은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그가 대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대형 창작뮤지컬 ‘아리랑’(조정래 원작)의 개막을 앞두고서다. 오는 11일 첫 공연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인 그를 최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에서 만났다. 그는 이날도 서너 시간밖에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잠을 자면서도 대본과 장면을 계속 복기(復棋)하고 있어요. 개막 때까지 총기를 잃지 않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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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열린 ‘아리랑’ 쇼케이스에서 1시간 분량의 낭독공연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이 적잖았다. 대본과 연출을 맡은 연출가 고선웅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민초들의 힘, 카타르시스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시컴퍼니 제공
지난달 22일 열린 ‘아리랑’ 쇼케이스에서 1시간 분량의 낭독공연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이 적잖았다. 대본과 연출을 맡은 연출가 고선웅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민초들의 힘, 카타르시스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시컴퍼니 제공


하지만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눈에는 총기가 또렷했다.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확신을 가진 작품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막연한 기대감 정도였어요. 하지만 대본을 쓰고 배우들과 함께 밀도를 채워가면서는 확신을 느꼈습니다. 뜨거운 이야기와 배우들의 카리스마가 한데 어우러지는 것을 봤거든요.”

5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아리랑’은 큰 흥행을 기대하기 힘든 작품이다. 서구의 판타지와 로맨스가 넘쳐나는 뮤지컬 시장에서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핍박의 역사는 아무래도 설 자리가 좁아 보인다. 하지만 5·18민주화운동의 비극을 다룬 연극 ‘푸르른 날에’로 5년 동안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그는 뮤지컬에서도 충분한 가능성을 보고 있다. “뮤지컬을 보면서 다 함께 환호해야 한다는 군중심리만 걷어낸다면, 관객이 작품 속의 슬픈 상황을 1대 1로 목격한다면 충분히 소통이 가능할 겁니다.”

‘푸르른 날에’, ‘홍도’ 등을 통해 슬픔을 꾹꾹 눌러담는 솜씨를 발휘해 온 고선웅 연출은 ‘아리랑’을 ‘애이불비(哀而不悲·슬프지만 슬픈 체하지 않음)’라는 네 글자로 요약했다. “슬픈 분위기를 강요하지 않는다”면서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푸르른 날에’처럼 잔잔한 위트 속에 슬픔을 녹여낼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땐 제가 젊은 패기가 있었죠. 그리고 너무나 아픈(이 단어를 떠올리기까지 한참 뜸을 들였다) 상황이기 때문에 재기발랄하게 보여줄 수 없었어요.” 애국심에 호소할 생각도, 웅장한 넘버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끌어낼 요량도 전혀 없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애이불비의 정서는 ‘민초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있었다. “전막을 연습할 때면 이상하게 눈물이 펑펑 나요. 선량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고향을 떠나 도망을 가고, 사랑하는데 만나지 못해야 하는지…” 그는 이를 ‘한국인의 유전자’라고 설명했다. “제 할아버지는 동학혁명에 가담한 의병이셨어요. 아버지는 ‘왜놈 학교에 가지 마라’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식교육을 받지 못하셨죠. 그런 우리의 부모, 조부모 세대의 이야기입니다.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1999년 신춘문예를 통해 극작가로 데뷔한 그는 연극과 뮤지컬, 창극 등 장르를 넘나들며 극작과 작사, 연출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전례 없는 흥행을 기록한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까지 그의 작품은 흥행과 호평을 놓치지 않는다. 가뿐하게 성공을 이어오고 있는 것 같지만 그는 지난 과정을 높이뛰기에 비유했다. “어느 단계에 이르면 넘어서야 할 것들이 보입니다. 허들을 1cm씩 높이고 뛰어넘는 것이죠. 저에겐 창극, 뮤지컬 다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힘들긴 해도 다 넘게 되더군요.” 9월 5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6만~13만원. (02)577-1987.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2015-07-0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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