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금 사냥꾼’ 만드는 모욕죄, 헌재 심판대 오르나

‘합의금 사냥꾼’ 만드는 모욕죄, 헌재 심판대 오르나

오세진 기자
입력 2015-04-13 00:06
수정 2015-04-1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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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고소 피해자·참여연대, 위헌법률심판 제청

지난해 5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를 위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한 A씨는 또 다른 회원 B씨가 눈에 거슬렸다. ‘세월호 참사는 일종의 교통사고인데 교통사고로 수십명씩 죽어나가도 대통령이 책임져야 되느냐’는 몰상식한 댓글로 추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글들을 올렸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B씨는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회원이었다. A씨는 B씨한테 “이 ㅅㄲ 돌았네”라는 댓글을 달았다. 3개월 뒤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B씨가 모욕죄로 고소한 것이다. A씨는 지난해 12월 법원의 약식명령(벌금 30만원)까지 받았다. A씨는 “B씨한테 고소당한 회원만 100명 안팎”이라고 토로했다.

합의금을 노린 일베 회원들의 무차별 고소와 홍가혜씨의 악플러 집단 고소로 논란이 된 형법상 모욕죄 조항에 대해 시민단체가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로 했다. 모욕죄의 기준이 불분명한 점을 악용해 모욕적인 언사를 먼저 유도해 고소한 뒤 합의금을 요구하는 ‘낚기식 집단 고소’나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를 겨냥해 모욕죄를 악용하는 사례 등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참여연대가 마련한 ‘모욕죄 악용 기획고소 피해자 사례 발표회’에 참석한 디지털카메라 동호회 사이트 회원 C(40)씨는 지난해 4월 회원 D씨가 세월호 참사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글을 발견했다. D씨는 또 “노무현 같은 사람이 지금 대통령 했으면 난리났겠죠.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이니까 사건 처리를 이렇게 빨리 했지”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D씨는 일베 회원이었다. C씨는 그에게 ‘일베충’ 등 댓글로 맞섰다. 지난해 11월 D씨한테 모욕죄로 고소당한 C씨는 다행히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D씨에게 고소를 당한 회원만 70여명에 이르렀다. C씨는 “(D씨가 회원들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전화하고 문자메시지 등을 보내 적게는 30만원, 많게는 500만원까지 합의금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해 경멸적인 표현을 쓴 사람에게 ‘그런 말 하지 말라’는 취지의 견해를 밝혔을 뿐인데, 공권력이 개입해 감정 표현을 막고 토론을 위축시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모욕죄에 대해 징역 1년 이하 또는 벌금 200만원 이하의 중형을 적용하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는 모욕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소인들과 더불어 13일 서울북부지법에 모욕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모욕죄 조항을 옹호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우정합동법률사무소 공동대표인 차기환 변호사는 “모욕죄는 엄격하고 신중하게 적용해야 한다”면서도 “상대방 인격을 모독하거나 정치적으로 매도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차원에서 모욕죄 조항은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15-04-13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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