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논쟁]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이슈&논쟁]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입력 2015-02-24 17:50
업데이트 2015-02-2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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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에게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문제를 놓고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말 ‘규제 기요틴 민관합동회의’를 열어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허용을 추진키로 하자 이에 반발해 의사단체 수장이 지난달 20일 단식에 나섰고 일주일 뒤 한의사 단체 수장이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규제 철폐를 촉구하며 단식을 하는 등 벼랑 끝 대치를 벌이기도 했다. 한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엑스레이나 초음파 등을 사용하는 것은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라고 주장한다. 또 한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다양한 영상자료를 활용한 수업이 이뤄지고 있어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반면 의사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면허제도를 부정하는 것이며 미숙한 사용으로 오히려 국민의 건강권을 해친다고 반박한다. 전문가의 찬반 의견을 들었다.



[贊] 남동현 상지대 한의과대학 진단학교실 교수

“기기 사용에 법률적 문제 없어…한의사 오진 줄이는데 이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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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현 상지대 한의과대학 진단학교실 교수
남동현 상지대 한의과대학 진단학교실 교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은 현대 한의사의 의무다. 기후 등 환경에 따라 지역별로 많이 나타나는 질병이 달라 의학은 각기 다른 특성을 갖고 발전해 왔다. 한의학 역시 유구한 역사를 통해 한반도에서 발전해 온 정통의학으로, 고유의 장점이 있고 국민의 보건과 건강증진에 이바지해 왔다. 한때 근대화와 일제식민지를 거치는 과정에서 한의학은 민간요법이나 미신으로 폄훼되기도 하고 중국 중의학의 아류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고유의 우수성에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적 성과를 흡수해 가며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논의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필연적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의학은 국민건강증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거치며 발전해 왔다. 동의보감의 탄생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한 결과물 중 하나였다. 임진왜란을 거치며 국토가 황폐해지자 수입 약재 중심의 기존 중국의학으로 국민보건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조선은 당시 국산약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의학체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허준을 중심으로 국산 약재 중심의 새로운 의료체계를 확립한 결과물이 바로 동의보감이었다.

한의학의 세계화와 국민의 건강증진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있는 현재도 한의학의 변화와 발전은 절실하다. 한방의료 분야의 의료기기 사용 확대는 한의학의 객관화와 세계화를 위한 발전 과정에 있어 필연적이다.

의료법은 한의사를 한방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하는 의료인이라고 정의한다. 또 한의약육성법에서는 한의약의 범위를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한방 의료행위뿐만 아니라 한의학을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 의료행위까지를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의사가 최선의 한방의료를 수행하려고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데 법률적인 문제는 없다고 본다. 의료기기는 본질적으로 가치중립적이다. 의료기기는 사람이나 동물을 진료, 검사, 치료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기구나 장치를 말한다. 따라서 특정 의료인 집단만의 전유물일 수 없다. 의료기기는 의료인이나 수의사가 그 직역에 따른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의사는 의료인으로서 한방진료를 수행하며 국민 건강증진을 위해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 또 국가는 국민건강수호와 증진을 위해 이에 대한 적절한 사용을 권장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다.

의료기기 사용 확대에 대한 많은 논쟁은 우리나라 보건체계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일부 의료인 집단에서는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사용할 경우 오진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의료현장에서 오진은 항상 존재한다. 의료기기는 인간의 한계를 보완해 오진을 줄이는 데 이바지해 왔다. 따라서 진단기기 사용은 한의사의 오진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국민 보건의 질을 높이는 데도 이바지할 것이다. 또 이런 논쟁은 의료인이 더욱 신중하게 진단기기를 사용하게 할 것이며 검사 결과 해석의 숙련도와 진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현재 의료계의 의료기기 사용 관련 논쟁은 매우 긍정적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많은 논란과 견제는 긴장을 낳고 적절한 긴장은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옮기는 데 일조해 왔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확대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두 의료계 발전 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그 결과가 국민 건강을 증진하고 건강보험료를 줄이는 데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사회적 힘을 쏟아야 한다.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국민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反] 한정호 충북대병원 내과교수

“현대 교육·면허제도 부정하고 본연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

한정호 충북대병원 내과교수
한정호 충북대병원 내과교수


현대의 면허제도는 허가행위보다 금지행위를 전제로 하며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은 의사와 한의사 모두 면허를 받은 범위 내에서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즉 의사는 한방적 진단과 치료술을 할 수 없고 한의사는 현대의학적 진료를 할 수 없다.

한의대에서 현대의학을 배우기 때문에 현대 의료기기를 쓸 수 있다는 주장은 현대의 교육 제도와 면허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현대 의료기기가 한방 진료에 필요하니 사용권을 의사와 동등하게 달라는 주장은 ‘한의학이 현대의학과 대등하거나 독립된 의학’이란 한의계의 주장이 허구였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한의학의 용도폐기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 진료를 위해 의료기기가 필요하다는 한의사의 주장대로라면 그동안 환자가 한의사에게 받은 진료와 진단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난 수십년간 한의사는 매번 ‘비싼 검사장비 없이도 진맥과 기(氣)를 느껴서 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과학적 검증 요구에 대해서는 ‘현대과학의 잣대로 우주 만물의 운행 원리인 기와 음양오행에 기반한 전통의학을 검증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의계는 과학의 산물인 현대의료기기만 사용해 진단에 도움을 받을 뿐 현대의학과 과학의 잣대로 한의학을 평가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이는 자동차운전면허 없이 차를 운전할 수 있게 해 주되, 도로를 주행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사고에 따른 법적 책임은 질 수 없다라는 의미와 같다.

이전의 지식이 부정되면 다음 세대의 지식으로 바꿔 나가는 것이 과학과 학문의 발전 방법이다. 인류 발전을 돌아보면, 과거의 오류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16세기 이전 고·중세의 인식론은 모두 소멸하거나 새로운 지식으로 바뀌었다. 수백년 전 서양의학이었던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 의학은 현대의학에 의해 부정돼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뿐 어느 나라에서도 고대 서양의학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국과 대만에서만 토속의학과 현대의학이 병존하고 있다. 중국은 몇십년간 중의학 연구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실패한 중의학 육성 정책을 한국 정부는 10년 전부터 다시 시작해 1조원가량의 혈세를 쏟아부어 왔다.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올 수 없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있는지도 모를 ‘기’를 측정하는 한의학기계, 정말 ‘기’가 우리 주변에 있다면 그 힘으로 비행기와 우주선은 모두 추락해야 했을 것이다. 고대의 형이상학적 관념(기·음양오행)이 과학화된다는 것은 전제가 잘못된 어리석은 망상일 뿐이다. 몇 가지 한방의료기기를 개발했다는 얘기가 있었으나, 한의사 스스로 본연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는 상황에까지 왔다.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갈등은 과학과 그렇지 않은 것의 대립이며 이 안에는 역사적·민족적·정치적 문제가 얽혀 있어 일반인이 보기에 착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갈등의 근원은 하나다. ‘점성술 vs 천문학’, ‘철학관 vs 기상청’, ‘창조설 vs 진화생물학’과 같이 종교나 철학, 믿음의 영역에 있어야 할 한의학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현대과학의 한 분야인 현대의학과 동등하게 취급을 받으며, 하나밖에 없는 생명의 진단과 치료에 민족과 전통이란 이름으로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도의 과학적 판단이 필요한 이 문제에 일반 국민과 일부 정치인의 감성적 관여는 문제 해결에 크나큰 오류를 가져 올 것이다.

과학에 국경은 없다. 이제 우리는 모두 중국 청동기시대의 믿음인 ‘음양오행과 기’를 기반으로 한 중세의 중·한의학을 계속 보호하고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세계와 통하는 대한민국 의학을 확립해야 한다.
2015-02-2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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