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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보는 팔레스타인

뒤집어보는 팔레스타인

김성호 기자
입력 2015-02-13 18:10
업데이트 2015-02-14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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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속 팔레스타인 문제

우스키 아키라 지음/김윤정 옮김/글항아리/351쪽/1만 6000원

‘지구촌 최고의 화약고’, ‘국제 분쟁지역의 최전방’…. 끝 모를 갈등과 일촉즉발의 충돌 위협이 상존하는 팔레스타인. 이곳은 정확한 위치며 점유의 권리 연원이나 증거조차 따질 수 없는 땅이다. 얽히고설킨 민족·정치·종교·국제관계 탓에 그 누구도 문제 해결을 선뜻 주도할 수 없는 ‘수수께끼의 땅’이 돼 버렸다. 최근 극성을 부리는 ‘이슬람국가’(IS)의 혼돈처럼 말이다. 팔레스타인은 정녕 ‘헤어날 수 없는 수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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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은 난관에 봉착해 해결 조짐이 보이지 않을 때 일차적으로 문제의 현상을 먼저 꼼꼼히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매듭 실마리를 찾으라는 본질 탐색의 강조다. 최근 국제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팔레스타인 문제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번지고 있다. 그 방식의 전환은 바로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의 탐색과 그릇된 인식의 전환에 맞닿아 있기도 하다.

‘세계사 속 팔레스타인 문제’는 그 흐름에 맞춰 팔레스타인 문제에 접근한 입문서로 다가온다. 아랍어를 공부하다가 중동 문제에 흥미를 느껴 중동·팔레스타인 문제에 천착해 사는 일본여대 문학부 교수가 문제의 본질을 보자고 호소하다시피 써낸 팔레스타인 전문서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문제라면 늘 종교를 그 중심에 놓고 생각하기 일쑤다. 유일신교끼리의, 다시 말하면 이슬람교와 기독교, 혹은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갈등 점철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문제의 출발은 사실상 종교와는 무관하다는 식의 접근이 책에선 도드라진다. 팔레스타인 인식을 뿌리째 흔들어 씻어 내는 역발상의 축적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팔레스타인은 로마시대의 호칭을 아랍어 식으로 발음한 ‘필라스틴’(필라스틴 사람의 땅)에서 유래한 말이다. 유대교도는 같은 땅을 히브리어 성서에 따라 ‘에레츠 이스라엘’(이스라엘의 땅)이라고 부른다. 명칭부터가 유럽과 서방에 기운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팔레스타인 안에는 세 유일신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있다. 그 예루살렘을 포함해 팔레스타인에는 아랍어를 쓰는 유대교인·기독교인의 여러 종파가 공존해 살고 있었다. 신약성경에 사마리아인으로 등장하는 사마리아파 유대교도가 아랍어를 쓰는 유대교인이다. 동방교회라 불리는 종파는 아랍어를 쓰는 기독교도로 분류된다. 이 사실은 팔레스타인과 관련해 통념처럼 굳어진 아랍인과 유대인의 종교 간, 민족 간 대립이 성서시대 이후 2000년 동안 반복된 숙명의 대립이 아님을 입증한다. 지금의 통념은 근대 민족주의 사상에서 비롯됐고 이스라엘 건국 후 유대교도 대이주로 아랍세계의 유대교도 사회가 소멸해 고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방세계가 유대인을 보는 시선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시 풀어야 할 중요한 요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독교 세계의 서방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을 ‘예수를 죽인 장본인’으로 여긴다. 오랫동안 지속된 그 ‘예수 살인’의 인식은 유대인들이 두고두고 겪어야 했던 수난의 큰 원인인 셈이다. 중세 십자군 전쟁 때도 유럽인들은 유대인을 주적인 무슬림(이슬람교도)과 내통하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겨 유대교도를 박해했다. 차곡차곡 쌓인 유대인 박해는 지금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크나큰 앙금이다.

유럽 패권 아래에서 만들어진 ‘근대세계 시스템’의 출발에도 처음부터 이슬람 세계의 패권에 대항하면서 유대교도를 박해하려는 의식이 내재돼 있었다고 저자는 분명히 지적한다. 오랫동안 받은 차별을 되갚아 주겠다는 듯 비유대계 시민을 차별하는 유대인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왜 유대교도가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 박해를 받았는지, 기독교와 이슬람은 유대교에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살핀 저자는 1880년대 제국주의 시대부터 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팔레스타인 문제가 서구 강대국에 이용당했던 역사를 결정적인 팩트 위주로 설명한다. 그 구슬을 꿰면 역시 팔레스타인 문제의 통념을 바꾸자는 ‘사실 직시’와 ‘발상의 전환’으로 결정된다.

아랍어의 ‘살람’과 히브리어의 ‘샬롬’ 모두 평화를 뜻하는 말이지만 어떤 편에 서느냐에 따라 그 평화의 방향은 극과 극으로 갈릴 수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 그 해결의 단초는 이런 측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근대에 발생했던 모든 문제가 뒤엉켜 생긴 게 팔레스타인 문제이기에 이것은 19세기 이후 근대적 국민국가와 국제정치가 지녀야 할 본연의 모습을 묻는 문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5-02-1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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