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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인문학’에 길을 묻다

‘재난인문학’에 길을 묻다

입력 2014-10-22 00:00
업데이트 2014-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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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부터 판교 사고까지… 속출하는 대형참사

지난 2월 17일 대학생 10명이 숨지고 204명이 다친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고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4·16 세월호 참사는 304명의 생명을 아예 통째로 앗아갔다. 한 달 남짓 뒤인 5월 26일 경기도 고양종합터미널에서 일하던 노동자 8명이 숨졌고 61명이 다쳤다. 여기에 지난 17일 경기 성남시 판교야외공연장에서 벌어진 환풍구 추락 사고까지. 올해 벌어진 크고 작은 참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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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나마 사고의 원인을 밝혀 더 이상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고 남아 있는 모든 이들을 위로하며 계속 기억하되 다시 추슬러 살 수 있게 하는 일 또한 절실하다. 인간에 집중하는 인문학이 학문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에서 구체적인 역할이 필요함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이 배경 속에서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 바로 ‘재난인문학’이다. 낯선 개념이다. 그러나 이미 20세기 후반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는 ‘위험사회론’을 내놓으며 학계에 재난인문학의 화두를 던져놓았다. 선진사회가 고도의 기술 발달로 ‘위험을 체계적으로 생산’하는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진입했다는 주장이다. 독일 사회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사회운영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오히려 그 믿음 속에서 고위험 기술이 결합되면서 이미 고위험의 요소가 내재돼 있다는 내용이다. 압축 성장에 따른 부정부패까지 결합된 한국사회에서는 그 위험도가 훌쩍 올라갈 수밖에 없다.

흔히 ‘문사철’(文史哲)로 표현돼 왔던 인문학은 이미 학문의 울타리를 넘어서 대중들과 접점을 넓게 형성하고 있다. 진리의 탐구를 본령으로 해 오던 인문학은 삶의 성찰, 행복의 가치, 사람에 대한 관심 등 실천적 가치로 영역을 넓혀 왔다. 그럼에도 잇따르는 대형참사와 재난 앞에 무기력함을 느끼고 깊은 정신적 공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며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고 냉소하는 흐름이 존재하는 것 역시 현실이다.

내려치는 따끔한 죽비도, 부드럽게 감싸주는 손길도, 함께 어깨 겯는 걸음도 모두 인문학에서 비롯된다. 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은 두 차례에 걸친 기획심포지엄으로 ‘재난인문학’의 학술적 토대 쌓기를 진행한다. 지난 17일 4·16 세월호 참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놓고 진행한 데 이어 오는 31일 ‘인문적 성찰과 재난인문학’의 기획심포지엄 두 번째 시간을 본격적으로 갖는다. 3부로 나눠 진행하며 인류학, 심리학, 역사학, 법학, 철학, 경영학, 사회학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발표자로 나서 재난인문학의 본격적인 내용 및 위상과 필요성 등을 담는다. 앞서 지난 5월 부산대 대학문화원에서는 ‘재난시대에 함께하는 인문학’을 주제로 세 차례에 걸쳐 특별기획특강을 가졌다.

재난 규모의 대형화뿐 아니라 재난의 원인 역시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재난 인문학이야말로 21세기적 융합 학문으로서 접근해야 함을 학계에서 먼저 제기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안성찬 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교수는 “재난 등이 생겼을 때 흔히 공학적, 행정적으로만 접근하곤 하는데 더욱 깊고 넓게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재난인문학”이라면서 “사회적 어젠다를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역할을 인문학이 맡겠다는 것이며 이는 기존 인문학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것도 있고 본래의 인문학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고 말했다. 백종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장은 “문화·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모든 것이 대형화됐으며 자연재난, 사회적 재난 역시 대형화돼 그 결과 숱한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면서 “대형 재난이 함축하고 있는 원인과 결과라는 두 범주를 따지며 원인 측면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를 보고 결과 측면에서는 희생자와 남은 자에 대한 치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재난인문학의 구체적인 역할을 설명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2014-10-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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