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사태’가 남긴 문제점(상)] ‘찍어내기 관치’ 흑역사 또 되풀이

[‘KB사태’가 남긴 문제점(상)] ‘찍어내기 관치’ 흑역사 또 되풀이

입력 2014-09-19 00:00
업데이트 2014-09-19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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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뚜렷한 죄목 못 대고 ‘사회적 물의’를 중대 죄목으로 3주만에 직무정지로 징계 강화

5개월 가까이 끌었던 ‘KB사태’가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의 강제 해임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번 KB사태는 어설픈 관치의 폐해와 낙하산 인사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금융관료들 스스로도 부끄러운 유산으로 여겼던 ‘찍어내기 관치’가 다시 부활했다는 점에서 한국 금융사에 또 하나의 오점을 남기게 됐다. KB사태가 남긴 문제점을 세 차례로 나눠 짚어본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연합뉴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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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사태 장기화를 막기 위해 관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론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여준 관치의 수준은 너무 후진적이었다. 무엇보다 임 전 회장의 뚜렷한 ‘죄목’과 제재 근거를 대지 못했다.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외압과 보고서 조작, 리베이트(뒷돈) 혐의 등은 관련자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려 법정에서 진실을 다투게 됐다. 전문성(전산)까지 요구되는 이런 사안에 중징계를 내리려면 그에 부합하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지만 1차 제재권을 행사했던 금융감독원은 그러지 못했다. 해석과 주장이 다른 정황근거만을 무수히 나열했을 따름이다. 최수현 금감원장의 중징계(문책경고) 사전통보에도 불구하고 제재심의위원회가 경징계(주의경고)로 제재 수위를 낮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후 최 원장은 초유의 거부권 행사를 통해 제재심 결정을 뒤집고 중징계(문책경고) 처분을 내렸다. 바통을 건네받은 금융위원회는 직무정지 3개월이라는 더 센 징계를 내렸다. 경징계→중징계→직무정지로 징계수위가 올라간 3주일 남짓 사이, 임 전 회장의 혐의를 뒷받침할 새로운 물증이나 증언은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다. 추가된 게 있다면 사회적인 논란 확산이었다. 금융위는 ‘사회적 물의’를 중대 죄목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 죄목에서는 금융 당국 수장들과 KB 이사회 등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KB사태가 산으로 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금융 당국은 오로지 ‘정권에 맞서는 전직 관료 퇴출’에만 매달렸고 세간의 관심도 ‘얼마나 버틸까’에만 쏠렸다. 왜, 무슨 잘못을 했고 양형이 합당한지 등은 뒷전이었다. 본말이 전도된 셈이다. 임 전 회장에게 거세게 반발할 빌미를 준 것은 다름 아닌 금융 당국이었던 것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냉정하게 따져보면 KB사태는 부부싸움 요란하게 했다고 제3자가 강제로 이혼시키고 처벌한 형국”이라면서 “자식들과 이웃에게 너무 피해가 가 경찰이 나서긴 했지만 그 방식이 거칠고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고 개탄했다. 이어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감독 당국이 민간 금융사 일에 어설프게 개입하거나 제재하면 곧바로 소송에 휘말리기 때문에 철저한 법리와 물증으로 무장한다”면서 “임 전 회장 해임 성공으로 금융 당국이 1차 승리를 챙겼지만 2차 법정 싸움에서도 이길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에게도 직무정지란 중징계를 내렸다가 3년간의 소송 끝에 패소, 제재를 취소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KB사태는 성에 차지 않더라도 끝까지 이사회에서 풀었어야 했는데 당국이 나서면서 문제가 더 꼬였다”며 “(지분이 없는) 정부가 주식회사 인사에 이래라저래라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 금융권 인사는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에 이어 정권에 맞서면 필패라는 사례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라며 “최수현 원장의 석연찮은 목적의식적 중징계 시도와, 방관에서 갑자기 강공으로 돌아선 신제윤 위원장의 느닷없는 태도 변화도 규명돼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처럼 처벌 위주의 손쉬운 관치에 의존해서는 금융회사의 내부역량을 키울 수 없다”고 우려했다.

안미현 기자 hyun@seoul.co.kr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2014-09-1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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