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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전 그날의 조선인 학살… 지금의 日 혐한시위로 이어져”

“91년 전 그날의 조선인 학살… 지금의 日 혐한시위로 이어져”

입력 2014-09-01 00:00
업데이트 2014-09-01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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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다룬 ‘9월, 도쿄의 길 위에서’ 저자 가토 나오키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방에서 발생한 관동대지진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도 크나큰 비극으로 남아 있다. 혼란을 틈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 유언비어가 나돌면서 일본 군인과 경찰, 자경단에 의해 수천명의 조선인이 학살됐다. 1일로 관동대지진 발생 91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당시 조선인 학살의 기록을 발굴해 지역별로 서술한 책 ‘9월, 도쿄의 길 위에서’가 일본 내에서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3월 출간된 이 책은 혐한 서적의 범람 속에서 발행 1만부, 판매 7000부를 돌파하며 예상외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저자인 프리랜서 저술가 가토 나오키(47)를 지난 29일 만나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이 지금의 일본에선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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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발생한 관동대학살 당시 희생된 조선인들의 시체가 일본 간토 지역 가나가와현 철길 옆에 마구잡이로 버려져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1923년 9월 발생한 관동대학살 당시 희생된 조선인들의 시체가 일본 간토 지역 가나가와현 철길 옆에 마구잡이로 버려져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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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시체를 확인하는 일본 경찰관의 모습. 그달 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땅과 함께 민심마저 흔들리고 갈라지자 일본은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조선인 시체를 확인하는 일본 경찰관의 모습. 그달 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땅과 함께 민심마저 흔들리고 갈라지자 일본은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어떤 계기로 쓰게 됐나.

-도쿄의 ‘코리아타운’인 오쿠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12년 여름 무렵부터 재특회(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 같은 집단이 오쿠보에서 “조선인을 죽여라”는 등 혐한 시위를 하는 것을 보고 그 시위의 역사적인 뿌리는 수십년 전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8월 31일부터 10월 8일까지 ‘관동대지진을 다시 전하는 블로그’를 개설했다. 1923년 9월 3일 누군가 살해됐다는 기록이 있으면 그것을 90년이 지난 2013년의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현장 사진과 글을 올리는 식이었다. 꽤 반향이 컸고 출판사의 제안으로 책을 내게 됐다.

가토 나오키
가토 나오키
→최근 히로시마에서 발생한 산사태 사고 때도 넷우익들이 ‘자이니치(재일) 한국인들이 빈집털이를 하고 있다’며 자경단을 꾸리는 사건이 있었다. 재난의 현장에서 외국인을 타깃으로 하는 유언비어는 91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세계사를 봐도 그렇다. 중세 프랑스에서 페스트가 유행했을 당시 ‘유대인이 병을 살포시켰다’는 말이 돈 적도 있다. 다행히도 히로시마현 경찰이 “빈집털이로 인해 외국인이 체포된 사례는 없다”며 대응을 잘했다. 앞으로 어떤 지역이라도 그런 대응이 되도록 태세를 갖춰야 한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타깃이 된 이유에 대해 “당시 조선인들은 일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고 언어도 서툴러 일본인과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왜곡된 인식을 믿어 버린다”고 밝혔다. 상황이 완전히 바뀐 지금도 인종주의가 이어지는 이유는.

-91년 전에는 잘 모르는 낯선 외국인에 대한 무서움과 의심이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공상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고 생각한다. 넷우익은 진짜 자이니치 한국인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을 괴물로 상정하고 인터넷에서 욕설을 퍼붓는다. 이를 미디어의 혐한 기사가 뒷받침한다. 다른 맥락으로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일한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이 1990년대 이후 무너졌지만 현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고, 그런 버릴 수 없는 자신감을 흔드는 존재로 아시아의 다른 나라(한국, 중국)가 보였다고 생각한다.

→91년 전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공감을 자리 잡게 하는 일이다. 역사수정주의자나 인종주의자들은 “한국은 거짓말을 한다”, “중국인은 정부에서 돈을 받아 데모를 한다”고 선입견을 심어 왔다. 이것을 뛰어넘는 힘은 공감 의식이다. 현실의 문제에 대한 논쟁은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위안부 등 식민 치하 피해자에 대한 생각을 일본의 일반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공감의 파이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 사진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2014-09-0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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