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야산서 부녀 동반자살

빚에 시달리던 부녀가 함께 목숨을 끊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딸은 “아버지를 욕하지 마세요”라는 유서를 남겼다.

21일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해운대구 송정동 한 야산에서 아버지 김모(46)씨와 딸 김모(17)양이 나무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지나가던 등산객이 발견, 20일 오전 6시 20분쯤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이 부녀는 한 나무에 나란히 목을 맸고, 발견 시각보다 3~4시간 전에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10여년 전부터 부인과 떨어져 노모와 딸과 함께 생활해 왔다. 김씨는 통닭집에 생닭을 납품하는 식품 유통사업을 해 왔으나 최근 사업 부진 등으로 1억원가량의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지난 17일 오후 “빚이 많아 내가 죽으면 다 끝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노모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과 수색 등을 벌여 3일 만에 부녀의 싸늘한 주검을 발견했다. 가출 뒤 부녀의 행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김씨와 딸의 호주머니에선 찢어진 노트에 쓰인 유서가 발견됐다. 아버지는 “남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을 적었고, 딸은 “내가 따라가겠다고 했다. 아버지를 욕하지 마라. 모두 행복해라”라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김양은 장학금을 받고 부산의 모 전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할 당시 학업 성적 못지않게 빠른 취업과 장학금 등 가정 여건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부녀에게 특별한 외상이 없고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실종 기간 행적 등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부녀가 함께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드문 사건”이라며 “딸의 유서대로 아버지를 욕할 순 없지만 딸이 입학하는 걸 보면 다시 힘을 얻고 다른 미래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