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엄마가 나와야 나라가 산다/박상숙 산업부 차장

[데스크 시각] 엄마가 나와야 나라가 산다/박상숙 산업부 차장

입력 2013-12-27 00:00
업데이트 2013-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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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안 되는 아이랑 실랑이하다가 번쩍 정신이 들었죠. 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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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숙 문화부장
박상숙 문화부장
한 대기업에서 진행한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리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당당히 직장에 복귀한 A씨. 10여년 전 아이에겐 엄마가 필요하다는 일념하에 미련 없이 일을 포기했다. 사표까지 낸 마당에 아이라도 잘 키워야지. 보상심리가 발동했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의 ‘올인’을 갈수록 부담스러워했다. 그녀가 다시 일을 하면서 모자 관계는 정상화됐다.

집으로 돌아간 엄마들은 거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자녀에게만 쏟는다. 주부로서의 존재 증명이 자녀의 성적과 대학 진학으로 판가름하는 사회 분위기가 엄마들을 학습 매니저로 만든다. 아이 때문에 수년 전 회사를 그만둔 친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100만원짜리 아동용 전집 구매였다. 외국계 화장품 회사를 관둔 후배는 집에 돌아온 날부터 3살짜리 아이의 영어교사가 됐다. 한글도 못 깨우친 아이는 매일 영어만 쓰는 엄마에 질려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이를 통한 대리만족은 반쪽짜리다. 여성들이, 엄마들이 자기가 아닌 그 누군가를 통해 성취감을 맛봐야 한다는 생각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선구적인 페미니스트 베티 프리단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을 더 앓는 이유가 자기 일이 없어서라고 했다. 20세기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했다면 21세기 여성들에게는 자기만의 일이 필요하다.

지난해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통령 배출로 기대감이 높았지만 올 한 해 뚜렷하게 달라지거나 사정이 개선된 것은 없는 듯하다. 오히려 사회, 문화적으로 퇴행을 보여주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어 민망스럽기도 하다. 그나마 좋은 점을 찾자면 대통령이 여성인 덕에 여성 고용과 여성 임원 승진이 확대되고, 여성 친화적인 업무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우대 제도가 얼마나 영양가가 있는지 따져볼 일이지만, 어떻든 여성에 대한 금기의 빗장은 자의 반 타의 반 열리고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최근 첫 여성 은행장, 여성 검사장, 여성 치안정감 등 뉴스가 잇따르지만 여전히 일반적 여성의 사회활동은 부족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5.2%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2.3%)보다 낮다. 특히 여성 대졸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평균(82.6%)보다 무려 20% 포인트나 낮은 62.4%다. 선진국에서는 고학력 여성일수록 경제활동 참가율 및 고용률(80% 이상)이 높지만 우리나라는 턱없이 낮은 상황이다.

그렇기에 올해의 히트작으로 리턴십 프로그램을 꼽고 싶다. 첫 여성 대통령 탄생과 경제민주화 바람 등에 떠밀려 나온 면이 없지 않지만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처럼 ‘리턴맘’(재취업 엄마)의 귀환은 제도적으로 더욱 다듬어지고 확대돼야 한다.

여성들의 개인적 성취감을 확인하고 가계 경제에 보탬이 되는 차원에서가 아니다. 고령화와 저출산 시대에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국가 발전전략의 줄기가 되기 때문이다. 여성을 끌어내지 못하면 사회나 경제가 지속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때문에 북유럽 국가 중에는 여성임원이 일정한 비율을 채우지 못하면 기업해산명령과 같은 초강수를 발동하는 곳도 있다.

내년부터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더 많은 리턴맘을 보고 싶다. 아이와 엄마,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도 말이다.

alex@seoul.co.kr
2013-12-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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