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언제까지 선진 독일을 부러워만 할 건가

[구본영 칼럼] 언제까지 선진 독일을 부러워만 할 건가

입력 2013-10-03 00:00
업데이트 2013-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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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논설실장
구본영 논설실장
내리 3선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지구촌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요즘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한국에서도 큰 관심사다. 이 수더분하게 생긴 여성에게 전 세계에서 선망의 눈길이 쏠리는 까닭은 뭘까. 어차피 침대 머리맡에 사진을 꽂아둘 만한 매력 만점의 ‘핀업걸’도 아닌데….

메르켈 정부의 눈부신 경제적 성취보다 더 부러운 게 있다. 독일 정치의 놀라운 통합성과 안정성이다. 이번에 메르켈이 이끈 기민당·기사당 중도우파 연합이 압승했다고 하지만 과반은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니 중도좌파인 사민당이나 녹색당과 ‘적과의 동침’ 격인 대연정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향후 독일 정정을 불안하게 보는 전문가는 없다.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정쟁 없이 절충하는 문화가 일찌감치 정착된 까닭이다. 이것이야말로 분단국 서독이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룩하고 선진국 클럽에서도 최우등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우린 어떤가. 십수년째 선진국 문턱에서 맴돌고 있다. 최근 대니얼 튜더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이 쓴 한국 평전을 읽고 얼마간 위안은 얻었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살고 있는 그의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원제: Korea, the impossible country)란 책이다. “1960년대 이후 한강의 기적으로 부를 만한 경제성장과 함께 지난 25년간 군사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나라”라는 평가가 담겨 있었다.

이처럼 외부에선 한국을 산업화·민주화를 함께 일군 나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내부는 극단의 정치적 대립으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유신헌법이 철폐되고 5공까지 지속됐던 ‘체육관 선거’도 막을 내렸는데도 그렇다. 1987년 직선제 개헌으로 5년 단임을 못 박아 어느 대통령도 장기 독재를 하려야 할 수도 없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으로 세계 정치사를 통틀어 소수당에 가장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야당의 동의 없이는 여당이 그 어떤 안건도 맘대로 처리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김한길 대표가 50일 넘게 노숙하면서 장외투쟁을 하느라 그런 대단한 권한을 스스로 내던졌다. 국가정보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빌미로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면서다. 물론 야당 입장에선 댓글이 북한의 사이버 침투와 종북세력의 준동을 막는 차원을 넘어 선거에 개입한 흔적이란 혐의를 둘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이 몇달 동안 수백개(설령 수천개라 하더라도)의 댓글을 달았다고 선거의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고 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일 듯싶다. 하루에도 좌·우, 친여·야로 갈려 지향점이 다른 수억개의 댓글이 명멸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말이다.

그 사이 민주당 지지율은 반토막 났다. 48% 대선 득표율이 20%대로 가라앉았다. 국회가 열리지 않으니, 국정원법 개정 등 개혁안인들 결실을 볼 리 만무하다. 민주당 지지율이 새누리당의 절반에다 박근혜 대통령의 3분의1 수준이란 건 뭘 말하나. 댓글 사건을 기화로 대통령의 리더십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통령을 불통 이미지로 낙인 찍는 데 성공했을지 모르나, 민주당도 민심을 잃었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공멸의 정치다. 이쯤 되면 후진국형 정치가 산업화-민주화에 이은 선진화의 길목에서 최대 걸림돌이 아닌가.

결국 선진국 진입의 장벽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운용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행태다. 물론 대통령과 여당이 먼저 메르켈이나 독일 여당처럼 포용력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기초연금 공약 축소를 사과하는 대통령에게 “히틀러의 말이 생각나게 한다”고 야유하는 치졸한 야당은 정작 독일엔 없다. 야당은 대통령이 실족하기만을 바라는 것으로 국민의 믿음을 얻을 순 없다. 견실한 대안을 내놓고 국민으로부터 점수를 따는 경쟁을 펴는 게 독일식 선진 정치의 요체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kby7@seoul.co.kr

2013-10-0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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