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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10) 희망을 던지고 기적을 쏜다…고양 원더스의 하루

[극과 극](10) 희망을 던지고 기적을 쏜다…고양 원더스의 하루

입력 2013-09-25 00:00
업데이트 2013-09-2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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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독립구단의 트라이아웃 현장

프로야구 10구단 KT 위즈가 공식 출범을 앞두고 23일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소속 선수 3명을 영입했다. 김종민(27·포수), 오현민(26·투수), 채선관(25·투수)이 바로 꿈을 이룬 주인공들. 이로써 고양 원더스는 지난해 5명, 올해 9명 등 창단 이후 2년간 14명의 프로구단 입단 선수를 배출하게 됐다.

가장 낮은 곳에서 야구를 꿈꾸는 사람들, 그들의 시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야구훈련장에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트라이아웃 지원자들이 연습경기를 펼치고 있다.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야구훈련장에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트라이아웃 지원자들이 연습경기를 펼치고 있다.


부상·계약해지…좌절의 문턱에서 잡은 희망의 끈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국가대표야구훈련장.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홈구장인 이곳에 40명의 선수들이 운동장에 모여 있었다.

그러나 제각각 디자인이 다른 유니폼에 임시 등번호가 적힌 조끼를 입은 이 선수들은 고양 원더스 선수들이 아닌 고양 원더스 선수가 되고자 모인 지원자들이었다.

이날은 고양 원더스의 새 선수를 선발하기 위한 ‘2013 트라이아웃’ 3일째 되는 날. 지원자 100여명 중 서류를 통과한 86명이 지난 1~2일 이틀간 달리기, 수비·타격, 투구, 연습경기 등의 1차 테스트를 치렀다. 이날 이곳에선 1차 테스트를 통과한 40명의 지원자들에 대한 최종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진행된 비선수 출신 트라이아웃과 달리 이날은 선수 경력(대한야구협회 6년 이상 선수 등록자, 학생 포함)이 있는 이들에게만 지원 자격이 주어졌다. 야구를 향한 꿈 못지않게 절박함과 절실함으로 채워진 지원자들인 셈이다.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야구훈련장에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트라이아웃 지원자들이 연습경기를 펼치고 있다.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야구훈련장에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트라이아웃 지원자들이 연습경기를 펼치고 있다.


황건주(24·투수)씨는 2008년 동산고를 졸업하자마자 SK 와이번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1군 경기에 뛸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팔꿈치 부상을 입어 2010년 9월에는 수술까지 받았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던 중 지난해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쓰라렸다.

“입단했을 때 동기 중에 고등학생이 저 혼자였어요. 1군 선배들은 물론 저보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도 많았구요. 그러다 보니 스스로 많이 위축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순 없었다. 그대로 돌아서기엔 야구가 너무 좋았다. 공익근무요원 복무 중 재활 훈련을 마치고 소집해제 뒤 인근 고등학교 야구부 훈련에 참여하는 등 글러브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 지난 1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야구훈련장에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트라이아웃 지원자들이 달리기 테스트에 임하고 있다. / 고양 원더스 페이스북
▲ 지난 1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야구훈련장에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트라이아웃 지원자들이 달리기 테스트에 임하고 있다. / 고양 원더스 페이스북


김선민(23·유격수)씨와 오세직(24·유격수)씨도 각각 소속팀이 있었다. 김선민씨는 2010년 삼성 라이온즈에 신고선수로, 오세직씨는 NC 다이노스 창단 멤버로 뛰었다. 그러나 각각 2011년, 2012년에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김선민씨는 “오히려 빨리 군대를 해결하고 처음부터 다시 야구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어요”라고 말했다. 오세직씨는 계약해지 뒤 야구를 그만두려 했지만 잠시 쉬는 동안 야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놓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야구훈련장에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트라이아웃 지원자들이 타격 테스트에 임하고 있다.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야구훈련장에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트라이아웃 지원자들이 타격 테스트에 임하고 있다.


전성환(28·유격수)씨는 최종 테스트를 뛰는 최고령 지원자였다. 지원 자격(1985~1995년생)으로서도 최고령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는데 대학 1학년 때 어깨 부상을 당했다. 어린 마음에 운동이 지겨워진 것도 있었다. 대학을 그만뒀고 입대했다.

제대한 뒤 트레이너, 웨이터, 막노동 등 온갖 일을 다했다. 그러나 돌고 돌아 돌아온 곳은 다시 야구였다. 2011년부터 야구연습장에 나가 사회인 야구팀 코치를 맡았다. 가르치다 보니 야구를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1군으로 뛰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스스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테스트를 받아보니 쉽지만은 않았다. 전성환씨는 “꾸준히 운동을 해온 친구들과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최종 테스트에 온 것만으로도 일단은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합격하면 죽기살기로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야구훈련장에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트라이아웃 최종 테스트가 열린 가운데 연습경기 다음 순번 타자들이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야구훈련장에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트라이아웃 최종 테스트가 열린 가운데 연습경기 다음 순번 타자들이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합격한다고 해서 이들의 꿈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의 연봉은 약 1000만원. 한국 프로야구 2군 선수 연봉 2400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12년 한국 프로야구 연봉 1위인 김태균 선수(한화 이글스·15억원), 미국 프로야구 연봉 1위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3000만 달러)와 비교할 때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러나 적은 연봉은 지원자들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황건주씨는 “연봉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알아보지도 않았다. 적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 내게 연봉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야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꿈은 프로 무대를 밟는 것이다. 이들에게 야구의 꿈을 이어주는 곳이 고양 원더스인 것이다.

관중도 환호도 없지만…패자부활을 꿈꾸다

이들은 김성근 감독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오세직씨는 “김성근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지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감독님께 배워서 하루빨리 프로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SK 시절 김성근 감독을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던 황건주씨 역시 “프로 가는 것이 최종 목표지만 합격하면 다음 목표는 김성근 감독님 밑에서 기량을 쌓는 것”이라면서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트라이아웃은 합격자 수를 정해놓지 않은 채 실력과 발전 가능성만으로 선수를 뽑을 예정이다. 냉정하게 말해 지원자 중 상당수는 이날 가슴에 품었던 꿈에서 다시 멀어져 갈 것이다. 최종 합격할 이들 역시 갈 길이 멀다.

지난 2일(한국시간) 허민(오른쪽) 고양 원더스 구단주가 미국 독립리그 야구팀 락랜드 볼더스에 입단해 3이닝 5실점의 성적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 고양 원더스 페이스북
지난 2일(한국시간) 허민(오른쪽) 고양 원더스 구단주가 미국 독립리그 야구팀 락랜드 볼더스에 입단해 3이닝 5실점의 성적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 고양 원더스 페이스북


최종 테스트 전날이었던 2일 고양 원더스 구단주인 허민씨가 미국 뉴욕주 프로비던트 뱅크 파크에서 열린 독립리그의 마운드에 올랐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허민 구단주는 선수 경험이 전무한 기업인이다. 첫 등판에서 3이닝 5실점의 호된 신고식을 치렀지만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 정식 야구선수로 마운드에 섰고 공을 던졌다. 야구와 전혀 관계 없는 길을 걸어왔지만 자신의 구단을 갖게 됐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야구선수의 꿈을 이뤘다.

꿈이란 꾸는 것은 아름답지만 이루긴 어렵기에 한편으론 잔혹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꾸준히 꿈을 꾸는 자에겐 기회가 오지만 꿈조차 꾸지 않는 이에겐 아무 것도 없다. 그렇기에 운동장에 선 모든 지원자들이 이날만큼은 승자였다.

글·사진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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