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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이고 붙인 ‘제3의 눈’ 빈디…여성 그리고 억압을 꿰뚫다

붙이고 붙인 ‘제3의 눈’ 빈디…여성 그리고 억압을 꿰뚫다

입력 2013-09-11 00:00
업데이트 2013-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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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작가 바티 커 국내 첫 개인전… 새달 5일까지 국제갤러리

“하루를 마치며 ‘오늘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고 스스로 묻곤 합니다. 예술은 끝없는 질문이기 때문이죠.”

인도 작가 바티 커가 밀랍으로 만든 작품 ‘와크 나무’ 앞에 서 있다. 이 작품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인더스 강가에서 마주했다는 전설의 나무를 소재로 삼았다.  국제갤러리 제공
인도 작가 바티 커가 밀랍으로 만든 작품 ‘와크 나무’ 앞에 서 있다. 이 작품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인더스 강가에서 마주했다는 전설의 나무를 소재로 삼았다.

국제갤러리 제공


진한 코발트색 재킷에 옅은 핑크색 바지. 갈색 머리카락을 살짝 뒤로 묶은 그는 시종일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고 무표정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걸 카리스마 넘친다고 해야 하나?

인도 출신 여성 작가인 바티 커(44)의 이야기다. 20대에 고국인 인도를 여행하다 인도의 국민 작가 수보다 굽타(49)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 순애보의 주인공이다. 또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며 ‘아트플러스옥션’지가 ‘다음 세대에 소장가치를 지닌 50인의 작가’로 지목했다.

그는 영국에서 유복한 인도계 이민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넥시켓 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대학 졸업 이듬해인 1992년 첫 인도 여행에서 남편인 굽타를 만났다. 이후 줄곧 인도 뉴델리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 중이다.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펼쳤지만 미술계에선 날 선 페미니즘 작가로 분류된다. “남들이 그렇게 평가한다면 (나도) 굳이 부인하지는 않겠다”는 두루뭉술한 답변이 돌아왔다.

커의 상징물은 ‘빈디’(인도 여성이 미간에 붙이는 점). 요즘 인도에선 이를 패션 아이콘 삼아 몸을 치장하는 남성마저 등장했으나 여전히 여성의 성과 자유를 억압하는 굴레로 인식된다. 커는 ‘제3의 눈’으로 불리는 빈디를 15년 전부터 캔버스에 붙이고 또 붙여 거대한 동그라미나 사각형을 만들어 왔다.

여기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반복해 붙이다 보면 연금술처럼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늘 같은 행위가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반복이 이뤄낸 진실이요, 삶이자 종교라는 설명이다.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이 다음 달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기형’(Abnomalies). 종교적이거나 장식적인 용도의 상징물을 끌어모아 비정상적 상황을 연출하며 끊임없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70개의 장식용 인형을 한 곳에 모은 작품을 통해선 누군가에게 복을 비는 대상물일지라도 이들을 한데 모으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역설적인 상황을 묘사했다. 인형들 가운데는 예수나 부처, 동물도 있다.

영국에서 태어나 자란 덕분에 제3자의 시선으로 인도 사회의 계급체제와 성별 문제를 냉철히 바라보는 작품관이 자연스레 몸에 뱄다. 그는 “빈디를 손으로 붙이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인도 여성의 정체성과 작업의 의미를 찾아간다. 속박의 상징인 빈디는 내 작품 속에서 종종 사랑과 번영을 뜻한다”고 말했다.

인도 여성의 전통 의상인 사리를 통해 여성성의 부재를 말하고, 반인반수의 여신 조각을 통해 불안정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 밀랍으로 만든 기괴한 모습의 ‘와크 나무’는 기원전 4세기 인도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더스강을 건너기 전 강가의 한 그루 나무에게 미래를 물었다가 “인도에 가지 말라”는 답을 들었다는 전설이다. 나무의 충고를 무시하고 인도를 침략한 알렉산더는 풍토병에 걸려 사망한다. 나뭇가지마다 짐승과 괴물의 얼굴 모양이 걸려 있다. “관객과 나무가 대화를 나눴으면 한다”는 게 작가의 의도다.

하지만 그는 힌두교도도, 불교도도 아니다. 오히려 예술을 삼라만상 위에 올려놓은 예술지상주의자다. 작가는 “예술가가 만든 종교적 상징 덕분에 종교가 존재한다”면서 “작가는 자신이 처한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열린 자세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3-09-1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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