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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 순직 후에야 냉방 허용한 소방서

탈진 순직 후에야 냉방 허용한 소방서

입력 2013-08-26 00:00
업데이트 2013-08-2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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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진압 등 열피로도 높은데 일률적 公기관 절전 지침 적용

‘블랙아웃’(대정전)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절전 지침이 일선 소방서에도 그대로 적용돼 소방관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직종과 달리 업무 피로도가 높고, 화재 현장에 수시로 출동해야 하는 소방관까지 획일적으로 절전에 동참하는 것은 융통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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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2일 소방방재청을 비롯한 정부 기관과 공기업, 국공립대 등 모든 공공기관장에게 긴급 절전 협조를 요청했다. 전력수급 최대 위기가 예상되는 지난 14일까지 사흘간 냉방기와 공조기 가동을 전면 중지하라는 내용이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당시 조치가 없었다면 전력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사태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부는 ‘2013년 하계 공공기관 단계별 전력수급 위기대응’에서 전력수급 경보 2단계인 ‘관심’(예비전력 400만㎾ 미만) 발령 때는 공공기관의 냉방기 사용을 자제하고, 다음 단계인 ‘주의’(300만㎾ 미만)에서는 냉방기 가동을 전면 중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선 소방관들은 지난 12~14일 폭염 속에 화재 현장과 찜통 같은 사무실을 오가는 고통을 수시로 겪었다고 털어놨다. 익명을 요구한 소방관은 25일 “냉방 가동 금지 첫날인 지난 12일에는 현장에 나갔을 때 힘이 빠지고 어지럽기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지난 17일에는 경남 김해에서 33세의 젊은 소방관이 탈진으로 순직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고(故) 김윤섭 소방장은 당시 폐수지 재처리 공장의 화재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남소방본부는 “김 소방장이 무더운 날씨에 두꺼운 화재 진압복을 입고 장시간 화재 진압을 하던 중 과도한 복사열로 탈진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소방장이 근무했던 김해소방서는 김 소방장 사망 이후 냉방기를 가동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 소방장의 순직이 소방서의 실내 온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종환 서울 보라매병원 응급의학과장은 “열사병 사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냉방 시설에서 일정 시간 체온을 식혀줘야 한다”면서 “지난 14일 정부기관을 방문했는데 사무실이 직원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더웠다“고 말했다.

현성호 경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 현장에서 강도 높은 임무를 수행하는 소방관들까지 다시 푹푹 찌는 사무실로 내모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김 소방장의 죽음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소방서들은 지난 14일 이후에도 줄곧 에어컨을 켜지 않다가 김 소방장의 순직 사고 직후 ‘탈진의 위험이 있으니 에어컨을 탄력적으로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한 소방관은 “순직 사고가 없었다면 아직까지 폭염 속에서 근무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교수는 “화재 현장에서 근무하는 소방 공무원에게 일반 공무원과 같은 절전 규정을 적용하면 임무 집중도가 떨어지고 2차 사고의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2013-08-2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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