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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여, 자연을 베껴라

인류여, 자연을 베껴라

입력 2013-08-24 00:00
업데이트 2013-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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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황금시대] 제이 하먼 지음/이영래 옮김/어크로스 464쪽/2만원

옷이나 가방에 지퍼 대신 사용되는 벨크로, 일명 찍찍이는 스위스의 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 1941년 알프스 하이킹 도중 옷에 달라붙은 도꼬마리(국화과의 한해살이 풀)에서 착안한 발명품이다. 자연을 관찰해 얻은 아이디어에 과학을 더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생체모방’ 기술의 초창기 대표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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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에서 영감을 얻은 슬로베니아 이졸라시의 한 아파트 발코니. 그늘을 만들어 줄 뿐아니라 사생활 보호의 효과까지 제공한다. 벌집 구조는 건축가들이 즐겨 활용하는 대표적인 생체모방 기술이다. 어크로스 제공
벌집에서 영감을 얻은 슬로베니아 이졸라시의 한 아파트 발코니. 그늘을 만들어 줄 뿐아니라 사생활 보호의 효과까지 제공한다. 벌집 구조는 건축가들이 즐겨 활용하는 대표적인 생체모방 기술이다.
어크로스 제공
‘새로운 황금시대’(원제 The Shark’s Paintbursh)는 이러한 생체모방 기술을 19세기 골드러시에 빗대 21세기 비즈니스의 새 금광으로 제시한다. 저자인 제이 하먼은 30년간 생체모방 기술을 이용해 상품을 개발해 온 발명가이자 기업가다. 호주에서 태어난 그는 해양야생국에서 동식물 연구가로 일하면서 터득한 생체모방 기술을 토대로 1982년 에너지 연구그룹 ERG를 설립해 호주 최대의 기술전문 회사로 성장시켰고, 이후 많은 특허와 라이선스를 가진 팍스사이언티픽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가 만든 자연 모방 디자인 제품은 냉장고, 터빈, 팬, 믹서 장치, 펌프 등 다양하다.

책에 따르면 생체모방 기술은 항공우주, 운송, 신소재, 약학, 건축 등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로 확산되는 추세다. 가령 원제로 사용된 상어의 사례를 보자. 상어의 움직임이 빠른 것은 거친 피부 표면이 물이 달라붙는 것을 막아 속도를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독일 과학자들은 상어의 피부 조직에서 영감을 얻어 항공기와 선체의 저항을 크게 감소시키는 페인트를 개발했다. 실험 결과 선체의 마찰력은 5% 이상 줄어들었다. 전 세계 항공기에 적용될 경우 연간 총 450만t의 연료 절감이 가능하다. 상어 피부는 스포츠에도 영향을 미쳤다. 스피도가 상어 피부와 유사한 형태의 직물로 만든 전신 수영복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쏟아내는 데 기여했다.

일본의 고속철도 신칸센은 물총새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물을 튀기거나 소리를 내지 않고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물총새의 머리와 부리를 연구한 끝에 열차의 코를 유선형으로 만들어 속도는 높이고 소음은 줄였다. 고래의 지느러미는 풍속 변화를 최소화해 돌풍에서도 전력 생산을 할 수 있게 풍력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켰고, 거미줄의 탄성과 연꽃의 방수 성질은 신소재 개발에 활용되고 있다. 버섯과 균류는 약학 분야에 탁월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육해공의 모든 생명체가 인간을 위한 혁신적인 기술의 무궁무진한 보고인 셈이다.

생체모방이란 용어는 동물학자인 재닌 베니어스가 1997년 처음 사용했지만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주변의 동식물에게서 삶의 지혜를 빌려 왔다. 폴리네시아인들이 사용하는 아웃리거 카누(선체 밖에 노가 붙어 있는 카누)는 물에 뜨는 콩깍지의 모습을 본떴고, 호주 원주민들은 새의 날개를 모방해서 부메랑을 만들었다.

이런 전통은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뒷전으로 밀렸다. 굳이 자연에서 효율적인 방법을 찾을 필요 없이 값싸고 풍부한 동력을 활용해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인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온난화는 가속화되며, 세계 경제는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생체모방 혁명이야말로 이런 위기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낼 수 있는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곤경에 처한 우리 세계는 생체모방을 통해 재창조될 수 있다. 수천억, 수조 개에 달하는 자연의 해법은 새로운 세계 건설의 원대한 가능성의 문을 열어 우리의 병든 환경과 대기를 구하고,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낳을 것이다.”(437쪽)

책은 생체모방 기술이 창업가들에게 매력적인 도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생체모사 비즈니스 운영의 원칙과 특허 획득, 시장을 장악하는 정확한 타이밍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뤘다. 결국 비즈니스의 세계를 다룬 책이지만 자연을 착취하는 대신 자연에서 지혜를 빌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패러다임을 만들자는 저자의 주장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말한다. 성공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연구실이나 회의실에 앉아 있지 말고 자연으로 눈을 돌려라.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2013-08-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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