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당신은 눔프족입니까/안미현 논설위원

입력 : ㅣ 수정 : 2013-08-21 00:22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안미현 논설위원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안미현 논설위원

얼마 전 ‘가슴 따뜻한 투캅스’ 사연이 화제가 됐다. 서울시립대 앞을 순찰하던 경찰 두 명은 70대 노점상 할머니가 뻥튀기 과자를 팔고 있는 것을 봤다. “찜통더위에 큰일 난다”며 얼른 들어가시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경찰들이 뻥튀기를 몽땅 사주자 그제서야 할머니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이 사연에 유난히 눈길이 더 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경찰들이 할머니가 쓰러지실까봐 남은 뻥튀기 7봉지를 전부 사들인 데 들어간 돈 때문이었다. 3500원. 땡볕 내리쬐는 오후 내내 3500원을 손에 쥐기 위해 할머니는 경찰의 귀가 권유를 거부했던 것이다. 뻥튀기 원가가 있을 테니 그나마 오롯이 3500원이 손에 떨어지는 것도 아닐 터다.

박근혜 대통령의 노인기초연금 공약이 떠올랐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20만원의 연금을 주겠다는 약속이다. 최상위 부자 몇 퍼센트는 예외로 한다고 해도 최대한 많은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생계연금은 반드시 줘야 함을 뻥튀기 할머니는 말하고 있다. 설사 한 네티즌의 독설대로 ‘젊은 날 나태함의 말로’라고 하더라도 국가는 이를 책임질 의무가 있다.

우리나라가 공공복지에 쓰는 돈은 200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9.4%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8.2%)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다. 회원국 평균(22.1%)의 절반도 안 된다. 1위인 프랑스(32%)와 비교하면 더 초라해진다. 그런데 프랑스 국민들은 소득의 평균 26.3%를 세금으로 낸다. 우리나라는 20.2%다. 국제비교가 가능한 2010년 기준으로는 19.3%다. 스웨덴(34.4%), 영국(28.3%) 등 복지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다.

나흘 천하로 끝난 세제개편안이 ‘봉봉세’(봉급쟁이를 봉으로 아는 세금), ‘원동거위’(세금을 거위의 털에 비유한 조원동 경제수석의 별칭) 등의 신조어만 남긴 것은 아니다. 복지에는 돈이 든다는 것을 환기시켰다. 돈 1만원도 못 내겠다는데 증세를 수용하겠느냐며 복지공약 수정론부터 덜컥 들고 나오는 것도 성급하지만, 고객이 계산서를 받을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복지는 좋지만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안 된다’(Not Out Of My Pocket)는 눔프족이 여론조사 때마다 절반 가까이 된다. 앞으로 공론화가 본격 진행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물론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최소한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을 찍었거나 찍지는 않았어도 복지공약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주머니 열기를 망설여서는 안 된다. 그때는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간다는 얘기도, 구체적으로 얼마나 나간다는 말도 없었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살면서 절감하는 진리 아닌가. 정부가 비과세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돈을 마련하겠다는데 왜 자꾸 증세 운운하느냐며 못마땅해할 수도 있다. 불요불급한 정부 지출 및 선심성 공약 구조조정, 줄줄 새는 세금과 예산을 막는 것은 당연히 따라야 할 전제조건이다. 정부 말대로 이런 노력만으로 돈줄이 확보되면 오죽 좋겠는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가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업자들을 탈탈 털어 걷은 돈이 1조 3600억여원이다. 국세청, 금융정보분석원 등이 눈에 불을 켜고 탈루 소득을 추적할 테니 이보다는 훨씬 더 걷히겠지만 그렇다고 정부 목표치인 27조원이 뚝딱 나오겠는가. 그게 가능하다면 국세청장은 사표를 써야 한다. 지금까지 엄청난 직무 태만을 한 것이니까. 아니할 말로 그렇게 만만하게 털리면 경제 앞에 ‘지하’라는 단어가 왜 붙었겠는가.

그러니 괜한 기대감 붙잡지 말고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국민도 언젠가 대통령이 들이밀 수정 계산서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제대로 된 계산서와 현명한 계산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정부와 전문가들의 몫이지만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그러자면 지금부터라도 생각해야 한다. 나는 눔프족인가, 아닌가.

hyun@seoul.co.kr

2013-08-21 31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블로그

서울Eye - 포토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