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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사과를 받는 방법/김민희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사과를 받는 방법/김민희 도쿄 특파원

입력 2013-08-17 00:00
업데이트 2013-08-1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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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도쿄 특파원
김민희 도쿄 특파원
8월의 도쿄는 뜨거웠다. 날씨도 그렇고 15일의 야스쿠니 신사도 그랬다.

일본 우익들의 난동은 한국 민주당 의원들이 온다고 한 오전 8시 즈음 시작됐다. 그들은 취재진이 포토라인을 만든 정문 앞으로 득달같이 달려와 “조센진은 돌아가라”고 외쳤다. 그후 1시간 동안 회를 거듭했고, 회를 거듭할수록 세도 불어났다. 그들의 시위를 접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실체적인 신변의 위험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무섭지?”라고 누군가 물었다. 고개를 저었다. 무서운 것보다, 분노보다, 슬픔이 앞섰다. 한국과 일본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야스쿠니 신사 진입에 실패한 이종걸 민주당 의원과 따로 얘기를 나누며 슬픔은 답답함으로 바뀌었다. 이 의원은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 흐름을 경고하기 위해 왔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태극기를 꺼내들고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가려고 몸싸움을 벌이는 것이 오히려 한·일 관계를 악화시켜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듯했다. 왜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려 했느냐는 질문에 이 의원은 “그런 초보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놀랍다. 일본 중심적 시각에 매몰된 것 아니냐”고 했다.

일본 중심적 시각이라기보다는 한·일 중심적 시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8·15와 야스쿠니 신사는 한국과 일본에겐 각각 정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는 전자가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광복절, 후자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묻혀 있는 곳이지만 일본에서 전자는 전쟁에서 패배한 날, 후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떠받드는 곳이다. 굳이 우익이 아니어도 일본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신사를 참배하는 이가 많다. 대다수의 일본인이 아직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침략전쟁 미화’가 아니라 ‘단순한 종교의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탓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한국의 의원들이 자신들의 총리를 비판하고 사죄를 요구한다면 일부 우익뿐 아니라 다수의 보통 일본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분명 일본의 우경화는 경계해야 할 사안이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고통을 받은 한국인들은 사과받아야 한다. 아직도 제대로 된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한국이 해야 할 몫이다.

그런데 방법이 틀렸다. 이 의원뿐 아니라 민주당과 새누리당 의원들의 잇따른 독도 방문,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일전에서의 플래카드 논란 등 최근 일련의 사안 모두 방향을 잘못 짚었다. 한국인의 감정적인 대응은 일본 우익들의 설 자리를 더 넓혀주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이른바 ‘적대적 공생 관계’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 덕에 지지율을 올렸던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처럼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 때문에 자신의 정당성을 부여받는 기이한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같은 과격 우경화 집단이 세를 불리는 데 기여한 것은 누구일까.

한·일 관계, 나아가 한국의 아픈 과거를 치유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은 등을 돌리고 있을 게 아니라 마주 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상대를 향한 삿대질이 아니다. 일본이 사과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면, 한국은 사과받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haru@seoul.co.kr

2013-08-1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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