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뫼비우스’도 못 트는 나라가 무슨 문화융성/안미현 논설위원

입력 : ㅣ 수정 : 2013-07-3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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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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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미현 논설위원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면 불편하다. 메시지가 불편하고 장면이 불편하다. 김 감독의 신작 ‘뫼비우스’가 또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고로 성기를 상실한,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소수의 마음을 표현한” 영화다. 지난 26일 ‘관계자 시사회’에서는 87%가 개봉에 찬성표를 던졌다. 김 감독은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두 차례나 ‘뫼비우스’에 사실상 상영 불가 판정을 내리자 “평론가·기자 등 관계자 시사회를 열어 반대표가 30% 넘게 나오면 영등위의 세 번째 판정에 관계 없이 개봉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애초부터 일반시민이 아닌 문화계 인사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다분히 ‘의도’가 엿보이기는 했지만 어찌됐든 공은 다시 영등위로 넘어왔다. 올 6월 초 영등위는 모자(母子) 성관계 장면 등을 문제삼아 이 영화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겼다. 이 등급을 받으면 제한상영관에서만 틀어야 한다. 김 감독은 20여컷을 잘라내 재심의를 요청했다. 영등위는 그래도 반사회적이라며 지난 16일 또다시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김 감독의 대응이 궁금했다. 과연 엎을 것인가, 아니면 더 자를 것인가. 궁금증은 생각보다 빨리 풀렸다. 영등위의 재심 판정이 나온 지 이틀 만에 김 감독은 “밤새 살을 자르듯 필름(50초 분량 12컷)을 더 잘랐다”며 세 번째 심의를 받겠다고 밝혔다. 상업영화판과 결탁했다며 한때 제자였던 유명 감독을 실명 비판했던 그인지라 다소 뜻밖이었다.

혹자는 가위질하지 말고 영등위의 권유대로 제한상영관에서 틀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제한상영관이 한 곳도 없다. 현행법상 제한상영관은 선전물이나 광고를 극장 밖으로 보이게 해선 안 된다. ‘성인전용관’이라는 간판을 밖에 걸 수조차 없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을 살거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한다. 제한상영가 등급이 아닌 영화도 틀 수 없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는 40편이 채 안 된다. 팔 물건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선전조차 못 하는데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누가 이런 극장을 운영하려 하겠는가.

영등위는 법률에 보장된 영화등급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것뿐이고 제한상영관이 없는 현실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존재하지도 않는 전용슈퍼에 가서 물건을 사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막연한 등급 분류 보류 제도가 2001년 위헌 판정을 받자 ‘기준’을 내세워 보완한 게 지금의 제한상영가 등급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상 상영 금지에 해당돼 위헌이라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5월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에 대해 제한상영가 등급 취소 판결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라도 위헌 소지가 다분한 제한상영가 등급은 없애야 한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유지하고 싶으면 전용상영관이 생존 가능하도록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이도 저도 당장 어떻게 할 자신이 없으면 관객에게 선택을 맡겨야 한다. 영화 ‘피에타’가 지난해 국제영화제에서 아무리 큰 상(베니스영화제 최고작품상)을 탔어도 김 감독의 작품을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관객은 상영관을 찾지 않았다. 호기심에 찾았다가 중간에 퇴장하는 관객도 있었다. 그런데 아예 선택조차 못하게 빗장을 거는 것은 한국 성인관객의 수준을 우습게 보는 처사다.

문화융성을 4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정한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는 다른 산업에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더해주는 21세기 연금술”이라며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문화정책은 현장 중심의 논의와 신선한 발상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전용극장이 없는데 전용극장에서만 틀라’는 코미디 같은 지침이 나오는 나라에서 어떻게 ‘문화융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hyun@seoul.co.kr

2013-07-3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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