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 딴 생각 말고 ‘이산 상봉’ 인도적으로 풀라

[사설] 북, 딴 생각 말고 ‘이산 상봉’ 인도적으로 풀라

입력 2013-07-13 00:00
업데이트 2013-07-1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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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과 올 추석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적십자 실무회담을 열 것을 제안했다가 하루 만인 그제 이를 보류했다.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은 유보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실무접촉만 즉각 수용하자, 북한이 “두 가지 실무회담 모두 보류”를 통보해온 것이다. 2010년 10~11월 진행된 제18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끊겼던 행사가 재개되면 혈육과의 생이별의 한을 풀 것을 기대했던 이산가족들의 실망은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

1985년 서울과 평양으로 남북 고향방문단을 교환한 이래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평양에서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비롯해 2010년 10월 제18차까지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지만, 그동안 남한 측 상봉자는 신청당사자 기준으로 겨우 1874명이다. 7차례의 화상 상봉자 279명을 포함해도 모두 2153명이다. 1988년부터 대한적십자사가 받은 이산가족 상봉을 원하는 누적 신청자가 6월 말 현재 12만 8824명임을 감안하면, 전체 신청자의 겨우 1.7%에 불과하다. 현재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는 7만 2864명(56.6%)으로 신청자의 절반 가까이 사망했다. 지난 한 달 사이에만도 613명이 사망했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의 다수는 초고령자이다. 70대 이상 고령자가 5만 8543명으로 80.3%에 이르고, 80대가 2만 9480명(40.5%)으로 가장 비중이 높다.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이 촌각을 다투는 이유다. 1988년 이래 지금까지 매년 2200명 이상의 신청자가 북한의 가족과 상봉하지 못한 한을 품고 돌아간 것이다.

함남 원산에서 19살의 나이에 1951년 1·4 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던 소설가 이호철은 2000년 이산가족 상봉 때 평양에서 여동생을 만나는 감격을 누렸다. 그러나 그 후 13년 동안 칠순이 된 여동생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추석에 임진각에서 차례를 지내던 고령의 실향민들이 점차 줄고 있다고 그는 한탄했다. 이씨와 같은 실향민들은 연간 1~2차례 상봉자로 각각 100여명을 선출하는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생존자들이 상봉하려면 730여년이 걸린다고 비판한다. 북한이 일과성 상봉 이벤트가 아닌, 상설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의 제도적 해결에 응해야 할 이유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산가족 상봉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 간 정치적 갈등으로 부침을 겪어서도 안 된다. 혈육의 상봉은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또 북핵으로 예민해진 남한에서 남북 경협 분위기를 되살릴 명분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경협 확대의 실마리는 북측이 이산가족들이 혈육을 만나지 못하는 고통과 아픔을 해결하는 데 성의를 보여줄 때 풀릴 수 있지 않겠는가.

2013-07-1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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