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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의 시시콜콜] ‘잊힐 권리법’이 스마트해져야 할 이유

[구본영의 시시콜콜] ‘잊힐 권리법’이 스마트해져야 할 이유

입력 2013-06-28 00:00
업데이트 2013-06-2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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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장의사’라는 신종 직업이 있다. 죽은 뒤에 자신에 관한 좋지 않은 정보가 인터넷상에서 지워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이들의 고객이다. 미국에서는 미래의 유망직종으로 꼽힌 지 오래다.

구본영 논설실장
구본영 논설실장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긴 하다. 하지만 영원히 잊히고 싶은 이도 있기 마련이다. 철없던 시절 돈 많은 사모님과 간통을 저지른 연예인이 있다고 하자. 유사한 불륜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자신의 기사가 끊임없이 검색된다고 생각해 보라. 아마 그는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을지 모른다.

이처럼 어느 한순간의 잘못된 행동이나 판단으로 인한 ‘디지털 주홍글씨’는 그 자체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 그로 인해 처벌을 받았는데도 남은 평생, 심지어 사후까지 따라다닌다면 말이다. 이 같은 개인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은 지난해 이른바 ‘잊힐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를 명문화한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입안한 바 있다.

국회가 며칠 전 ‘잊힐 권리’ 법제화에 시동을 걸었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정보통신망법 및 저작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인이 인터넷상 자신의 사생활 정보·동영상을 삭제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제출된 법안에 따르면 인터넷 사업자가 개인의 정보 삭제 요청을 이행하지 않으면 1000만원까지 과태료를 물리게 돼 있다.

하지만 사안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잊힐 권리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이라는 법익과 언론의 자유 및 국민의 알 권리라는 다른 법익이 충돌을 일으키는 문제”(한양대 이재진 교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페인·프랑스·독일 등 EU 국가에서는 개인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잊힐 권리 도입에 적극성을 띠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에선 시큰둥한 분위기다.

특히 잊힐 권리의 대상이 되는 정보는 개인 정보이기는 하지만, 정보주체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를 삭제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 및 학문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문재완 한국외대 교수)라는 학술적 견해도 있다. 극단적 비유를 하자면 친일행각을 벌인 인사의 후손이 조상의 비행을 지우는 것은 역사를 말소하는 일이라는 시각이다.

잊힐 권리의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입법 내용은 스마트해져야 할 까닭도 여기에 있다. 특히 공인에 관한 한 잊힐 권리를 법적 규제로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요컨대 평범한 갑남을녀들에겐 웹상의 개인정보 삭제요구권을 보장하되 공인의 경우에는 언론윤리강령 등을 통해 개별 미디어가 사안별로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 자율 규제 방식이 대안일 수 있다. 공인의 범주에서 연예인 등을 뺄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논설실장 kby7@seoul.co.kr

2013-06-2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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