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수 樂山樂水] 사면권, 무엇이 문제인가?

입력 : ㅣ 수정 : 2013-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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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고려대 명예교수

▲ 김일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고려대 명예교수

정권 교체기마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로 진통을 겪는다. 설 명절 직전에 단행된 특별사면에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포함돼 논란이 있었다. 새 정부 출범 직후에도 사회통합 차원에서 대규모 사면이 단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정권 교체기의 특별사면·감형·복권이야말로 이 제도가 권력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특별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그러나 그것이 고도의 정치성을 띠면 법치주의의 근본 정신을 훼손하고, 일반인의 건전한 법 감정을 해할 수 있다. 그래서 2007년 12월, 국회는 50여년 만에 사면법을 고쳐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특별사면, 특정인에 대한 감형·복권을 상신토록 하되, 법무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9인의 사면 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했다. 심사위원회의 심사 과정과 심사 내용의 공개 시기 등을 대통령령으로 정해 심의 의결서는 사면 직후 공개하되, 회의록은 10년 경과 후 공개토록 했다.

문제는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지닌 높은 정치색 탓에 사면권 행사도 정치적 논란에 쉽게 휩싸인다는 점이다. 논란의 요지는 정치적 계산에서 오·남용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단행하면 사회적·정치적 구설수에 휩싸이기 쉽고, 안 하면 고유 권한 행사를 게을리함으로써 법적 책임을 소홀히 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쿠오바디스?

사면·감형·복권제도 자체는 참 좋은 것이다. 형벌권 행사의 주된 임무가 평화로운 공동체의 질서 유지에 있는 만큼, 형사소추권이나 유죄 판결에 따른 형의 집행을 가차없이 적용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 환경이나 법 의식의 변화에 따라 이미 확정되었거나 집행 중인 형벌권을 신축성 있게 활용하는 게 따뜻한 법치와 사회통합에 더 적합할 수 있다. 법 질서 내부의 긴장도 완화시켜 법치주의가 기계적인 율법주의로 전락하지 않게 하기도 한다.

독일의 법철학자 라트브루흐는 사면제도가 “법 밖의 세계에서 비쳐 들어와 법 세계의 추운 암흑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광선이며, 기적이 자연계의 법칙을 깨뜨리듯 법 세계 속의 법칙 없는 기적”이라고 했다. 결국 사면제도는 냉엄한 형법 현실을 녹이는 사랑의 법이며, 절망으로 방황하는 수형자들에게 앞길을 열어주는 희망의 법이기도 하다. 형법의 세계에서도 사면의 언덕에 기대어 사랑이나 희망의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치적 계산이나 개인적인 연민 때문에 대통령이 사면제도를 오·남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차가운 법의 세계에 온기를 불어넣기는커녕 법적 안정성과 사회 통합을 해칠 수 있다. 무엇보다 정의로운 법질서가 우선돼야 하고, 희망과 사랑의 이념은 냉혹한 정의의 요구를 완화시켜 주는 보완적 기능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가 진정으로 법치주의와 사회 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실제로 대통령의 사면권이 행사된다면, 역대 정권에서 시행해 왔던 갈등 많은 사면권을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그리하여 법적 정의와 법적 안정성이 조화를 이룬, 절제된 사면권이 행사되었으면 좋겠다.

법의 세계는 옛날처럼 단순하지 않다. 사면권도 갈등하는 이익 사이의 균형을 고려해야 역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한때 국가원수의 주권적 권한으로 신성시되었던 사면권이 오늘날엔 누구나 질책하거나 훈수를 두는 범속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게 민주주의가 오랜 풍상을 견디고 가꾸어 온 열매이다.

따라서 앞으로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결코 모든 오류로부터 면제된 교황적 권위의 발현이 아니라, 착오하기 쉬운 양심을 지닌 민의의 솔직한 반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으면 한다. 역대 정권의 사면권 행사를 뒤돌아보면, 민의는 대부분 권력의 정상보다 현명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2013-02-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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