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과 진화와의 상관관계

스토리텔링과 진화와의 상관관계

입력 2013-02-02 00:00
업데이트 2013-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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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기원/브라이언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흔히 문화와 예술은 ‘먹고사는 것’이 충족되고서야 존재할 수 있는 개념으로 통한다. 절대빈곤이 제거된 뒤에야 비로소 문화와 예술을 찾게 된다는 인식은 문화 예술의 위상을 사회적 생존과 발전의 부속물이나 부산물 쯤으로 내려놓기 일쑤다. 그 인식은 때로 ‘예술 무용론’으로까지 번진다.

인간 본성을 진화론으로 이해하려는 인문사회학계는 진화론 차원에서 인간행동을 밝혀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인간정신을 얼마만큼 설명해낼 수 있을까.

‘이야기의 기원’(브라이언 보이드 지음, 남경태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은 바로 그 문화진화론 차원에서 인간정신과 행동에 초점을 맞춘 흥미로운 책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영문학과 교수인 저자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학술적으로 패러디해 풀어낸 문화진화론은 지금까지 통설을 송두리째 뒤집는다. 논거의 핵심은 ‘예술은 인간의 생존기능에 부합하도록 진화에 의해 끊임없이 설계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를 밤새워 읽는 이유를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의 지론을 따르면 인간 종은 생물학적으로 현실을 넘어 지속적으로 사고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현실과 무관한 허구의 이야기를 말하고 들으려는 본능, 즉 스토리텔링 본능을 가지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로 통칭되는 예술의 충동과 능력은 인간의 조건과 현실적인 제약에 더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만들며 동시에 유사한 환경과 조건을 지속 발전시키도록 돕는다는 주장이다.

단적인 예는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찾을 수 있다. 하루 한 번 묽은 찻물을 배급받는 수용자들의 생존율 차이다. 허겁지겁 찻물을 마셔버린 수용자와, 절반은 마시고 나머지로는 얼굴과 손발을 씻는 수용자.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전자보다 최소한의 인간적 체모를 지키려 한 후자가 더 많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는 뭘 말할까. 문화를 진화의 상위단계에 올라간 뒤에야 필요한 부속·부산물로 보는 인식의 철저한 전복인 셈이다.

저자는 인간이 갖고있는 놀이의 역할에 특히 주목한다. 새끼 사자들이 함께 깨물고 쫓는 놀이를 하면서 사냥을 배우는 것 처럼 인간의 놀이는 진화과정에서 ‘적응’의 이점을 갖는다. 인간에게 예술은 이런 인지능력을 발달시키는 놀이이다. 그렇다면 언어를 사용한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정신, 욕구와 의도뿐만 아니라 가장 높은 단계의 정신활동이 될 수 있는, 상호 이해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종의 ‘적응’에 다름아니다. 결국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예술은 개인과 사회의 생존을 가능하게 한 필수 요소이며 이는 인류 문명의 여명기에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사실이다.” 2만7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3-02-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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