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즘의 거목 김흥수 화백의 부인 장수현 관장 이승에서 애달프게 끝난 사부곡

하모니즘의 거목 김흥수 화백의 부인 장수현 관장 이승에서 애달프게 끝난 사부곡

입력 2012-11-21 00:00
업데이트 2012-11-2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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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작품 헐값에 못 판다” 투병·생활고에도 남편의 분신 지킨 사랑·존경의 내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남편과 그의 그림을 지켜 주려 했던 부인. 자기 그림을 헐값에 팔아서라도 아내를 살리고 싶었던 노화백. 이승에서 애달프게 끝나 버린 그들의 사랑이 감동을 주고 있다.

사제지간으로 만나 43세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1992년 결혼한 김흥수(왼쪽) 화백과 고(故) 장수현씨는 20년 동안 한결같은 부부애를 과시했다. 사진은 2005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당시 다정했던 모습.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사제지간으로 만나 43세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1992년 결혼한 김흥수(왼쪽) 화백과 고(故) 장수현씨는 20년 동안 한결같은 부부애를 과시했다. 사진은 2005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당시 다정했던 모습.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화단의 거목 김흥수(93) 화백과 지난 13일 50세로 숨을 거둔 아내 장수현씨의 이야기다. 구순을 넘긴 김 화백은 죽어 가는 아내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작품을 처분하려 했지만 장씨는 “남편의 작품을 그렇게 팔 수는 없다.”며 반대했다. 부부는 이별의 순간까지 사랑과 존경을 지켰다.

20일 미술계 등에 따르면 김 화백은 최근 측근들을 통해 자신의 작품 여러 점을 미술시장에 팔려고 했다. 김 화백의 한 제자는 “한 달 전쯤 선생님께서 생활비가 부족해 그림을 팔고 싶은데 살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셨다.”고 전했다. 아내 장씨의 병세가 악화되자 병원비 등에 보태려고 작품 판매에 나선 것이다. 장씨는 3년째 난소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김 화백은 2002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자신의 이름을 건 김흥수미술관을 세우는 과정에서 많은 돈을 써 경제 형편이 좋지 못했다. 장씨는 미술관의 관장을 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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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현씨가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20일 서울 평창동 김흥수미술관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장수현씨가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20일 서울 평창동 김흥수미술관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오랜만에 거장의 작품이 나온다는 소식에 시장은 들썩였다. 하지만 거래는 이뤄지지 못했다. 김 화백의 측근은 “미술시장이 불경기로 얼어붙은 탓에 가격을 맞추기가 어려웠다.”면서 “김 화백은 호(號)당 500만원 정도를 생각했는데 시세는 200만~300만원 수준이었다.”고 했다.

제자와 지인들은 조심스레 “미술계 상황이 안 좋으니 가격을 조금 낮춰 보자.”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병석에 있던 아내는 반대했다. 돈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존경하는 남편의 그림이 시장에서 평가절하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한 지인은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워낙 깊은 분이라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림이 헐값에 거래되는 걸 원치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20년 결혼 생활 동안 노화백을 마음으로 섬겼던 장씨. 한 미술평론가는 “장씨는 남편의 흐트러진 모습이 남들에게 보여지는 걸 극도로 꺼렸다.”면서 “아무리 친한 손님이 와도 김 화백에게 정장과 스카프, 목걸이, 모자 등을 챙겨 드린 후에 문을 열어 줄 정도였다.”고 전했다. 김 화백이 고령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헌신적 내조 덕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 화백 부부는 1992년 결혼 때 숱한 화제를 뿌렸다. 43세 연상인 거장과 제자의 결혼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하지만 두 사람을 아는 사람들은 “서로를 너무나도 존경하는 부러운 부부”라고 입을 모은다.

미술관 운영 등 살림살이를 도맡아 했던 장씨가 세상을 떠 김 화백과 관련된 사업은 모두 멈춰 선 상태다. 미술관은 휴관 중이다. 김 화백을 돌보는 가족은 “김 화백이 워낙 고령이어서 거동이 불편하긴 하지만 여전히 건강하신 편”이라면서 “장씨가 살아서 못다 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2012-11-2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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