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갑성 “테너도 바리톤도 아니라구요? 둘 다 가능한 매력적인 ‘박쥐’죠”

안갑성 “테너도 바리톤도 아니라구요? 둘 다 가능한 매력적인 ‘박쥐’죠”

입력 2012-11-19 00:00
업데이트 2012-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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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레타 ‘박쥐’로 고국무대 전격 데뷔하는 무서운 신예

오페레타는 대사와 춤이 더해진 작은 오페라를 뜻한다. TV 연속극처럼 예습 없이 봐도 이해하기 쉽다. 유럽 큰 극장들의 인기 송년 레퍼토리 ‘박쥐’가 대표적이다. 1920년대 경제 공황기 오스트리아 빈 상류사회의 위선과 허영, 속물 근성을 풍자한 코미디다.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신나는 왈츠와 폴카가 곁들여져 연말 분위기에는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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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이 ‘박쥐’를 전막 공연하기로 한 건 꽤 오래전. 문제는 주인공 아이젠슈타인의 캐스팅이었다. ‘박쥐’는 언어유희가 도드라진 작품이다. 독일어 대사를 속사포 랩처럼 뱉어내는 성악가가 필요하다. 테너가 하기엔 낮고, 바리톤이 부르기엔 높은 음역이란 점도 걸림돌이다. 바그너 가극 전문 베테랑 테너 리처드 버클리 스틸이 먼저 낙점됐다. 하지만 4회 공연 중 나머지 2회를 책임질 한국가수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지난 2월 독일 베를린에 출장을 간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들은 오디션을 보러 온 바리톤 안갑성(31)을 만나고 깜짝 놀랐다. 20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뒤 유학을 떠난 터라 국내에서 인지도가 없는 것이 위험요인. 하지만 바리톤 중 가장 높은 음역을 소화하는 하이 바리톤인 데다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5년을 공부한 덕에 독일어가 입에 붙었다. 그와 일했던 슈타츠오퍼 극장 관계자도 추천했다. 신예 바리톤 안갑성이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박쥐’ 주인공으로 한국무대에 전격 데뷔하는 사연이다.

안갑성은 “아이젠슈타인은 테너가 부르기엔 낮고 바리톤이 부르기엔 높아 경계에 걸친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끼리 ‘테리톤’(테너+바리톤)이라고 부른다. 국립오페라단이 무명인 날 믿어준 덕에 까마득한 미래에 설 것으로 생각했던 예당(예술의전당)에서 데뷔를 하게 됐다. 떨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라며 웃었다. 이어 “‘박쥐’는 ‘무한도전’ 같다. 볼거리가 많고, 캐릭터 사이의 해프닝이 꼬리를 문다. 관객이 출연자와 같이 노는 느낌이다. 대학 때 처음 출연한 작품이 ‘박쥐’(당시는 조역 프랑크 역)였으니 각별한 인연”이라고 덧붙였다.

테너 버클리 스틸-소프라노 파멜라 암스트롱(로잘린데 역) 캐스팅과 비교할 때 안갑성-박은주(부산대 교수) 조합의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알프레드와 블린트란 테너 배역이 두 개가 더 있다. 소프라노와 삼중창을 할 때에도 테너가 아닌 바리톤이 아이젠슈타인을 맡아야 앙상블의 매력이 살아난다.”고 설명했다. 또 “아내로 나오는 박은주 선생님이 연상이다. 딴에는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의 고현정-천정명 커플이 결혼한 뒤 벌어진 해프닝이란 설정으로 접근했다.”면서 “팀워크가 워낙 끈끈하다. 내가 아이디어를 늘어놓으면 박 선생님이 ‘나이 어린 남자랑 몬 살겠다’고 농담한다. 그럼 나는 ‘샤치’(schatzi·자기야)라고 부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이답지 않은 입담, 성악가답지 않은 끼와 유머감각은 남다른 이력에서 비롯됐다. 성악을 시작한 건 인천 광성고 2학년 때다. 고1 때부터 중창단 활동을 하면서 노래를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다. 10개월 동안 벼락치기 레슨을 받았다. 입시곡 두 개를 달달 외웠다. 한예종에 덜컥 합격했다. 그때는 베이스였다. 하지만 대학에 적응하지 못 했다. “예고 출신이랑 게임이 안 됐다. 한 학기 동안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지내다가 해병대에 입대했다.”고 말했다. 보통 성악가들이 군악대에서 복무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선택. 하지만 그는 “공기 좋은 백령도에서 성대가 건강해져 돌아왔다.”며 웃었다. 복학 이후 바리톤으로 전향했다. 그동안 억지로 성대를 눌러서 저음을 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권투선수로 치면 체급을 올린 것과 마찬가지다. 처음엔 괴로웠다. 바리톤으로 옮기면서부터 유명 성악가의 목소리를 흉내낼 게 아니라 나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올인했다.”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 대신 독일로 유학을 간 까닭은 뭘까. 간단했다. “학비가 공짜”라고 했다. 이어 “독일만큼 졸업 후 극장에서 일할 기회가 많은 나라도 없다. 이탈리아에선 졸업생 100명 중 1~2명쯤 기회가 있다면, 독일은 50~60명은 기회가 있다.”고 덧붙였다. 베를린 국립음대 성악과 최고연주자 과정을 수석졸업한 그는 2010년 엠머리히 즈몰라상 수상 등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고 있다. 아직 유명극장 전속가수는 아니다. 하이 바리톤 배역이 드문 탓에 한 시즌 십수 편을 무대에 올리는 대형극장들이 그를 전속가수로 둘 이유는 없다. 그래도 그는 낙관적이다. 그는 “쉽게 말하면 비정규직”이라면서도 “내 목소리가 가진 장점을 어떤 분들은 (테너와 바리톤의 중간 의미로) 박쥐라고도 한다. 테너로 올릴 수도 바리톤으로 내릴 수도 있지만, 나만의 장점을 살리고 싶다.”며 웃었다.

‘박쥐’는 28일부터 새달 1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개그맨 김병만이 술취한 교도관 프로쉬 역할로 깜짝 출연한다. 1만~15만원.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2012-11-1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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