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투성이’ 대한민국 법 까발리다

입력 : ㅣ 수정 : 2012-10-13 00:44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당신을 위한 법은 없다】 박영규·류여해 지음 꿈결 펴냄
“대통령 일가에 부담을 줄까봐 배임죄 적용을 주저했다.”는 취지의 서울중앙지검장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다. 차관급 검찰 인사가 현 권력에 대한 고려가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친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대중은 법과 정의가 강자의 논리에 휘둘린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더라도 이 같은 사실을 직접 당사자를 통해 듣게 되는 순간 충격은 엄청나다. 아마도 이 책을 만나면 더욱 비탄에 빠지리라.

박영규 경기대 법학교수와 류여해 한국사법연구원 교수는 신간 ‘당신을 위한 법은 없다’(꿈결 펴냄)에서 대한민국 법체계가 얼마나 부실하기 짝이 없는지 낱낱이 들춘다.

책은 류 교수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류 교수는 2007년부터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일하면서 우리나라 법률체계의 문제점을 마주했다. 법을 제대로 만들겠다는 사명감에 국회사무처 법제실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 목표는 무참히 깨졌다. 처음 접한 입법 의뢰서는 남녀가 데이트를 하다가 폭력을 가하면 가중처벌을 하자는, 가칭 ‘데이트 폭력 금지법’이었다. 시민을 쉽게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데다 형법상 폭행죄로 처벌할 수 있는 사안을 특별법으로 제정한다는 것은 법체계에 맞지 않았다. 법률로 성립하기 어려우니 철회해야 한다고 보고했지만 상관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대충대충’, ‘의원실 입맛에 맞게’, ‘기한은 칼같이 엄수’라는 3가지 법제실 규칙에 어긋나는 일일 뿐이다.

의원들은 열심히 일하나. 16대 국회 때 1912건이던 법안 발의가 17대 국회 때는 6387건, 18대에는 1만 2220건으로 쭉쭉 늘어났다. 하지만 가결률은 10~20%대 수준이다. 자동 폐기된 법안을 되살리고, 옆 의원의 법안에서 숫자만 바꾸는 식으로 베끼기를 밥먹듯 하니 통과는 안 되고, 법안 공해에 시달릴 뿐이다. 일부 법제실 직원의 전문성 미흡과 무사안일주의, 국회의원들의 자질 부족이 만든 합작품이 현재의 부실한 대한민국 입법체계인 셈이다.

책은 입법부를 비롯해 공권력을 남용하는 검찰과 경찰, 돈과 권력에 관대한 사법부 등 법을 ‘유통’하는 모든 기관에 비판의 칼날을 댄다. “법을 다루는 절대신이 있어도 우리나라 법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몰라 두 손 두 발 다 들 것만 같다.”는 류 교수는 그래도 희망을 말한다. 시민사회는 성숙했고, 정의와 양심의 소리에 따르는 정치인들도 늘어나는 덕이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판검사도 ‘멸종’하지 않았다. 류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제대로 된 시각으로 법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을 것”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어려운 법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는 내용으로, 류 교수는 자신의 바람을 전달한다. 1만 38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2012-10-13 18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블로그

서울Eye - 포토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