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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side] 日 대부업체의 한국 점령사

[Weekend inside] 日 대부업체의 한국 점령사

입력 2012-09-15 00:00
업데이트 2012-09-1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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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앤캐시 등 환란 틈타 상륙 카드대란 불에 기름 부은 격 서민 턴 고금리 수익 일부 본국행

대부업계 1위인 일본 회사 러시앤캐시가 지난 13일 6개월의 영업정지를 면했다. 그동안 턱밑까지 추격해오던 또 다른 일본업체 산와머니를 따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두 회사 모두 법정 최고이자율(39%)을 위반, 기존 최고금리인 44%를 받아서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러시앤캐시는 신규대출이 아니라는 점이 받아들여져 영업정지를 피했다. 두 업체를 떨게 했던 법정 최고 이자율은 그러나 한때 없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월. 대부업계는 정부로부터 ‘예기치 않은 선물’을 받았다. 이자율 최고 상한선인 연 40%가,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효율적 재원 배분’이라는 명분 아래 폐지됐다. 하지만 IMF가 고금리 정책을 요구했지, 이자 상한선 폐지를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당시 일본의 법정 최고 이자율은 29.5%였다. 일본 정부의 감독도 엄격했다. 일본 대부업체로서는 ‘탐스러운 새 시장’이 바로 옆 나라에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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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앤캐시(회사명 A&P파이낸셜)는 최고 이자율 폐지 이듬해인 1999년 10월 한국에 상륙했다. 일본 법인인 J&K캐피털이 99.97%의 지분을 갖고 있다. 미즈사랑, 원캐싱 등이 자회사다. 국내 대부업 시장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가 처음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9월 말 기준 자산총계는 491억원, 이자수익 142억원, 순이익 23억원이었다. 가장 최근 감사보고서인 2011년 9월 말 기준으로는 자산이 2조 955억원으로 43배 급증했다. 이자수익은 6677억원으로 같은 기간 47배, 순이익은 948억원으로 41배 늘어났다. 12년 사이에 40배 이상 급성장한 것이다.

순익만 놓고 따져도 러시앤캐시는 12년 동안 총 6231억원을 벌어들였다. 산와머니는 9년여 동안 6524억원을 벌었다. 이 가운데 일부는 대출금 상환이나 이자 지급 등을 통해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이자제한법 폐지가 1등 공신 역할을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이자제한법은 1962년 처음 제정됐다. 당시에는 최고 한도가 연 20%였다. 이후 최고 한도가 오르내렸지만 외환위기 직후에도 연 40%로 유지됐다.

이자제한법 폐지는 사채 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사채시장이 일본 대부업체의 상륙으로 전국을 상대로 영업하는 법인 시장으로 바뀌었다. 대출과 추심(빚 회수) 기법이 선진화돼 있는 일본 대부업계는 빠른 속도로 국내 시장을 잠식해 갔다.

내수 확대를 위해 장려된 신용카드 사용도 빼놓을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은 신용카드를 사실상 무제한 발급했다. 신용카드사는 1999년 영업정보 유출을 이유로 신용카드 사용자에 대한 정보공유를 거부했다. 2003년 ‘카드 대란’이 터지고서야 4장 이상 카드 소지자의 정보 공유가 이뤄졌다. 지금은 2장 이상 보유자의 정보가 공유된다. 카드 거품이 터지면서 ‘돌려막기’가 시작됐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소비자들은 대부업체를 찾았다.

이자제한법 폐지와 신용카드 정보 미공유라는 두 개의 정책 공백은 국내 금융시장에는 독이 됐지만 일본 대부업체에는 비약적인 발전의 토양이 됐다.

러시앤캐시에 이어 2002년 8월 또 다른 일본계인 산와머니(산와대부)가 한국에 진출했다. 그해 10월 최고 이자율을 66%로 정한 대부업법이 시행됐다. 국내 토종업체로 업계 3위인 웰컴크레디라인(웰컴론)도 이때 세워졌다.

2003년 257억원의 순이익을 거둔 산와머니는 지난해 4509억원을 벌며 17배 성장했다. 최대주주는 일본 산와그룹이 출자한 페이퍼컴퍼니 유나이티드(지분 95%)다. 러시앤캐시가 언론 인터뷰나 대부업협회 업무에 적극적인 것과 달리 산와머니는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편이다.

일본 대부업체들은 정보기술(IT)에 적극 투자, 1시간 안에 대출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 누가 더 빨리 대출해주느냐의 경쟁이었다. 서울 강남·잠실 등에 세련된 사무실도 갖췄다. 돈을 빌릴 때마다 시중은행들의 고압적인 자세에 굴욕감을 느껴야 했던, 신용등급이 낮은 소비자들에게는 새로운 서비스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 대가는 높은 이자였다.

이들은 마케팅에도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유명 연예인에게 억 단위의 모델료를 지급하고, 케이블방송에 엄청난 광고를 했다. 러시앤캐시는 최근 1년간(2010년 10월∼2011년 9월) 595억원, 산와머니는 지난 한해 534억원을 광고선전비에 썼다. 지나친 물량 공세라는 지적에 러시앤캐시 측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얼른 기억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케이블방송의 광고 가운데 대부업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넘는다.

이들의 성장에는 제1금융권의 도움도 작용했다. 러시앤캐시의 지난해 9월 말 기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농협은 금리 연 7.5%로 50억원, 우리은행은 8.43%로 10억원, 신한은행은 6.41%로 4억 9475만원을 이 회사에 대출해줬다. 하나은행은 2001년 러시앤캐시에 10.5% 금리로 10억원을 빌려주는 등 초기 진출을 도왔다. 국내 은행에서 저금리로 종잣돈을 빌려 급전이 필요한 개인 고객에게 20~30%대 고금리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익이 많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 은행만 대부업체에 돈을 빌려주는 것은 아니다. 산와머니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메릴린치에서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거래금리)에 4.5% 포인트를 더한 금리로 540억원을 대출받았다. 시중은행의 해외 차입 금리는 리보+1% 포인트 안팎이다. 저축은행들도 10%대 금리로 대출해줬다. 전주(錢主)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거래처이기 때문이다. 최윤(재일교포) 러시앤캐시 회장도 8.5∼10.0%에 160억원을 자사에 대출해줬다.

일본 업체들의 성공으로 토종 대부업체도 늘어났다. 법인 대부업자는 2008년 말 1199개에서 지난해 말 1625개로 3년 사이 35.5% 늘었다.

물론 1, 2위 일본 업체의 아성은 굳건하다. 토종인 웰컴론은 격차 큰 3위다. 실적이 두 업체의 절반 수준이다. 고리대금업의 피해와 극복 사례 등을 담은 책 ‘머니 힐링’(가제)을 준비 중인 조성목 금융감독원 저축은행검사1국장은 “자본력에서 차이가 나는 만큼 일본계 대부업체의 독점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경하·이성원기자 lark3@seoul.co.kr

2012-09-1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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