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단, 한국의 시뻘건 속살 드러내다

전쟁과 분단, 한국의 시뻘건 속살 드러내다

입력 2012-09-01 00:00
수정 2012-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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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현 국내 첫 개인전

“글쎄요. 회전이랄까, 유행이랄까. 화단도 너무 흐름이 빠른 것 같아요. 새로운 게 뭐 있느냐는 얘길 자꾸 듣다 보면 아, 나도 그러면 바뀌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답변이 선선했다. 새로운 작품을 보니 신학철 작가가 떠오른다고 하자 딱히 부정한다거나 뭔가 다른 접근법임을 애써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럼요, 저도 아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라고 받아넘긴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거리낌 없이 다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다. 한술 더 떠 “붉은 산수 때도 중국 그림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뭘.”이라며 씩 웃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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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윈 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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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 인 블랙
레인보 인 블랙
이세현(45) 작가. 10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본관과 신관을 통틀어 전시한다. 전시가 이렇게 대규모로 이뤄진 까닭은 그놈의 인기 때문이다. 해외에서의 바쁜 전시 일정 때문에 이번 전시가 국내에서 여는 첫 개인전일 뿐 아니라 그간 변신을 위해 별러 왔던 신작을 동시에 선보이는 자리다. 본관에는 기존 연작 시리즈, 신관에는 신작 시리즈가 전시돼 있다. 작가는 홍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17년 가까이 무명으로 지냈다. 그림은 물론 조각, 설치, 드로잉 등 안 해본 게 없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가슴은 무너졌지만 그래도 기댈 곳은 작품뿐. 전 재산을 털어 영국으로 떠났다.

마지막 도전지 영국에서 그만 대박이 터졌다. 첼시예술대학원 졸업 전시에서 작품이 다 팔려 나가더니 입소문이 나 각종 전시에 불려다녔다. 세계적인 컬렉터인 울리 지그가 직접 런던 작업실에 찾아와 작품을 사 가기도 했다. 거기에다 미국 페이스갤러리에서 그의 작품 3점을 판화로 제작하기까지 했다. 국내에선 익숙지 않은 이름이라 조용히 넘어갔지만 페이스갤러리는 검증된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만 다룬다. 한국 작가로는 이우환에 이어 두 번째였을 뿐 아니라 젊은 작가를 택했다는 점에서 미술계의 화젯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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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현 작가
이세현 작가
작품의 어떤 점이 관심을 끌었을까. 역시 답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군 복무 시절 야간 투시경으로 우리 산하를 봤던 경험을 살려 그 느낌대로 고향 통영 앞바다를 그렸다. 단, 녹색이 아니라 붉은색으로 그렸다. 그리고 그 속에다 분단, 전쟁, 군사 문화, 급격한 근대화가 낳은 을씨년스러운 풍경들을 섞어 넣었다. 한국의 시뻘건 속살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낸 것이다. 울리 지그도 그의 작품을 수집한 이유로 “분단의 비극성을 정면으로 다룬 작가를 찾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 ‘붉은 산수’ 혹은 ‘비트윈 레드’(Between Red) 연작의 탄생이다. 대작인 데다 세필로 붉은색 한 가지만으로 장시간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 과정은 그야말로 악전고투다.

최신작에서는 변신이 뚜렷하다. ‘붉은 산수’ 연작이 수평적인 공간성이 두드러진다면 이번에 내놓은 ‘분재 산수’는 수직적인 시간성이 돋보인다. 풍경 속에 녹아 있는 듯 펼쳐져 있던 이런저런 한국 현대사의 흔적들이 이번엔 분재 모양으로, 수직적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전시 제목도 인공적인 냄새가 가득 풍기는 ‘플라스틱 가든’이다. 혹시 피비린내 나는 슬픈 역사를 인위적으로 꺾어 넣어 억지로 저렇게 아름다운 분재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지 되묻는 듯하다. 웃긴 건 그 분재를 담은 그릇이 고무 대야라는 점이다. 성공한 역사, 위대한 역사라는 공치사들이 그렇게 유치하고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것은 아닌지 되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림 외에 설치 작품도 있는데 ‘무릉도원’이 눈에 띈다. 철근 기둥 위에다 시멘트 집을 얼기설기 엮었는데 위태롭고 불안해 보이는 그 모습이 현재의 우리 아니겠느냐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02)739-493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2-09-0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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