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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고래, 바다를 누비다

변방의 고래, 바다를 누비다

입력 2012-07-15 00:00
업데이트 2012-07-1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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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에서 극지방에 이르기까지 바다에는 다양한 고래가 물살을 가른다. 과거 고래는 땅에 살던 동물이었다. 몸이 털로 덮인 포유동물로, 육지가 먼 고향인 셈이다. 지금도 많은 고래가 어미의 자궁 속에서 자라는 동안 몸에 털이 난다. 하지만 태어난 뒤에는 몸에 털이 없는 것이 대부분인데, 몇몇 종의 경우 콧속과 분기공 쪽에 털이 나기도 한다. 그들은 그 털을 감각모로 이용한다. 뭍에서 바다로 간 고래는 이렇듯 과거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있다.





고래의 친척은 하마와 사슴?

고래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육지에서 바다로 변한 것은 아니다. 육상동물로 생활하면서 부분적으로 수중생활에 적응했다. 처음엔 발굽이 있었을 늑대와 같은 육식동물이 얕은 물에 엎드려 먹이를 잡아먹으며 네 다리로 걷거나 헤엄을 쳤다. 서서히 바다로 서식지를 옮기며 바다사자와 같은 움직임을 보였을 테고, 어느 순간 드디어 꼬리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바다로 나아간 것이다.

유전적으로 고래는 하마와 가장 유사하다. 이 둘은 5천만~6천만 년 전, 물을 좋아했던 공동 조상을 갖고 있다. 고래는 분자계통학적으로 되새김을 하는 반추동물인 소, 염소, 양, 사슴과도 가깝다. 반추동물들은 과거의 한때 물을 선호했었다고 추정된다.

현재 10종이 생존해 있는 꼬마사슴과의 경우, 대부분 마른 땅에서 살아가지만 적을 만나면 물속에 뛰어들어 몇 분간 잠수하기도 한다. 아시아에서 두 종, 아프리카에서 한 종이 그런 습성을 보인다. 이러한 유형의 반추동물이 고래와 돌고래 같은 고래 종류로 갈라져 진화된 것으로 보인다. 고래와 가까운 친척인 하마도 위협을 받으면 잠수한다. 그러나 양이나 사슴과 같은 종류는 긴 세월 마른 땅에 적응해 살면서 그 특징을 잃어버렸다.

자유를 찾아 바다로

생물은 갈등상황이 닥치면 억압요인에 길들여지거나, 피해서 이동하거나, 상황에 맞서는 식으로 외모와 행동, 지위를 분화하고 발달시킨다. 그렇다 해도 육상생활을 하던 고래가 바다로 서식지를 바꾸는 일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고래가 육상에 살던 신생대 초기를 분석해보면 이 도전의 실마리가 잡힌다. 중생대까지 육상과 바다에서 우위를 점한 종은 파충류였다. 바다악어를 비롯한 해양파충류는 저희가 해변으로 몰아낸 해양포유동물을 잡아먹으면서 풍요로운 삶을 즐겼다. 그러나 해양파충류는 중생대를 마감하게 한 급격한 환경변화를 견디지 못했다. 매서운 포식자가 사라지자, 해양의 포유동물은 근근이 버텨오던 궁색한 삶을 면하게 된다. 그때부터 바다는 고래뿐 아니라 물개, 물범, 바다코끼리와 같은 갖가지 포유동물이 도전해볼 만한 장소가 되었다. 종의 분화에 탄력이 붙자, 빠른 속도로 여러 해양포유동물이 생긴 셈이다.

물론 생물 스스로 의지를 갖고 자신의 외형이나 행동을 바꿔 자손에게 물려주는 진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진화란 생물의 유전자 내에서 대립유전자의 상대빈도의 변화가 일어나고, 환경에 적응한 것이 생존해 자손을 남기는 자연선택과정을 거치며,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래에게 일어난 남다른 진화과정은 인내와 끈기의 드라마다.

고래는 신생대의 여러 포유동물 중에서도 제한된 서식지에 길들여지는 데 만족하지 않고, 열린 공간을 향해 나아갔다. 해양동물로 살게 된 고래는 서식지의 범위제한과 억압조건을 스스로 벗어났다. 연안 생태계의 변방에서 숨죽이며 살던 고래가 일찍이 생태계에서 볼 수 없었던 커다란 몸집으로 온 바다를 저희의 영역으로 만든 것이다.

경쟁은 생물의 삶을 세분화시키는 힘이다. 생태계 발달 초기에는 남을 눌러야 살아남는다는 불안정한 환경이 형성되지만 발달 후기에는 공존하는 협력 시스템으로 안정된 환경을 유지한다. 고래 역시 이 같은 방식으로 자유를 찾았다. (6월호에 휘파람새가 같은 종끼리 경쟁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필자의 의도가 잘못 전달되었음을 밝힌다.)

최형선_생물은 ‘진실하고 선해서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는 생태학자입니다. 현재 한국YWCA 연합회 돌봄과 살림팀장으로, 세상의 아픈 곳을 돌보고 살리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최근 저서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로 ‘제30회 한국과학기술도서상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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