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오버 더 레인보우

오버 더 레인보우

입력 2012-07-08 00:00
업데이트 2012-07-08 11:17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스페인 남쪽의 카나리아 제도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서 3년을 살았고, 처음으로 무지개를 보았다.
남편을 만난 건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 섬에서였다. 함께 휴가를 떠난 친구와 바닷가를 걷고 있는데, 눈이 낙타처럼 크고 둥근 남자가 자꾸 나를 쳐다봤다. 그 눈이 아니었다면 온몸에 문신을 한 남자의 초대에 응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날 밤, 남편은 거실과 뒷뜰에 장미를 가득 꽂아놓았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짓에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나는 사랑에 빠졌고, 몇 달 뒤에 결혼식을 올렸다.

낭만은 오래가지 않았다. 맨몸으로 떠나온 내게 남편이 보여준 건 서랍 속에서 꾸깃꾸깃해진 지폐 뭉치였다. 가난하게 자라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남편은 통장 만드는 법을 몰랐다. 영어도 미국에서 불법 이민자로 일하며 더듬더듬 배운 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언어였다. 남편과 나는 두 사람 중 누구의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대화해야 했고, 주변엔 한국인도 없었다. 나는 할 일도 없었다. 기념품 가게에 나가 시간제로 일하긴 했지만 쉬는 시간이면 빠른 스페인어로 떠드는 동료들 옆에서 웃는 척만 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일하러 나가 있을 때면 혼자 울기를 여러 날 하던 때였다. 겨울 소나기가 내렸다. 한국에선 한여름에 내릴 법한 짧고 세찬 소나기였다. 돌아가고 싶었다. 매운 어묵을 먹고 국물을 마시면서 한국어로 수다를 떨고 싶었다. 그렇게 또다시 혼자 눈물이 맺히던 순간이었다. 그림책처럼 무지개가 떴다. 크고 둥글고 여섯 가지 색의 줄무늬가 또렷하게 보이는, 비현실적인 무지개였다.

나는 멍하니 테라스에 쪼그리고 앉아 무지개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무지개 끝에는 희망이 있다고 했다. 이런 생활 끝에도 희망이 있을까 싶었지만 외로움에 시들어가던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괜찮을 거야, 그만 울어도 돼.

얼마 뒤에 남편과 나는 짐을 꾸려 스페인 본토로 떠났다. 나는 학원에 다니며 제대로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많지는 않지만 한국인 친구들도 만났다. 그 순간 무지개가 뜨지 않았다면 남편과 나는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그날 들은 목소리는 진실이었다. 괜찮을 거야.

강인영_ 스페인에서 심심하지만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한국의 한여름 소나기가 그립지만 중국인 가게에서 신라면을 사다 먹으며 씩씩하게 견디고 있다고 합니다.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