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 속 이야기 | <최종병기 활>의 최종 규명

영화는 병자호란의 해원 씻김굿

희랍 신화에서 큐피드의 금 화살을 맞으면 곧장 사랑에 빠진다 했다. “필(feel)이 꽂혔다”는 요즘 젊은이들의 말투에서 ‘꽂혔다’도 바로 큐피드 화살에서 유래한 말이겠다.



2011년 여름, 김한민 감독의 액션 사극영화 <최종병기 활>이 7백여만 관객을 끌어 모았다. 이전에도 ‘활’을 제목으로 내건 영화가 있었지만 영화 마니아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음과는 딴판이다. 국제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던 김기덕 감독의 <활>은 제58회 칸 영화제(2005) 공식 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의 초청작이었다. “팽팽함은 강인함과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죽는 시간까지 활처럼 팽팽하게 살고 싶다”에 제작의 뜻을 두었지만, 국내 관객몰이는 실패였다. 영화 속 활이 본령 구실 대신 점술(占術)용으로 쓰이는 등, ‘초점이 흐린’ 설정 탓도 있었지 싶다.

반면, <최후병기 활>이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은 아마도 한민족의 정한(情恨) 역사에 잠복했던 심금에다 ‘필’을 꽂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라를 초토화시켰던 왜란을 당한 지 불과 40여 년 만에 또 다시 휘몰아친 병자호란은 무엇보다 이 땅의 인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던 참화였다.

어느 공동체이든 외부 충격을 받으면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반격해 보지 못하면 충격파는 고스란히 공동체 안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충격은 내연(內燃)을 낳고, 마침내는 내분(內紛)을 일으킬 소지라 했다. 호란을 당했던 당시의 조선사회가 꼭 그랬다.

내분은 먼저 왕조의 지배층 안에서 치열했다. 호란을 다룬 소설 《남한산성》(2007) 서문에서 작가 김훈은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라 적었다. 척화파와 주화파 사이의 의견 대립이 그렇게 치열했다.

내분의 후유증은 최대 50만 명의 무고한 백성들이 나중에 청(淸)이 된 후금(後金) 수도 심양으로 끌려가면서 더욱 깊은 앙금을 남겼다. 포로들을 기다렸던 것은 힘깨나 쓸 만한 남정네들은 노역 노예로, 그 가운데 5만 명으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들은 치마끈도 풀어야 하는 몸종으로 살아야 하는 치욕이었다. 대부분 거기서 한 많은 인생을 마쳤지만, 더러는 그 질곡에서 도망쳐서, 더러는 피붙이를 찾아 나선 가족들에게 노예시장에서 구출되어 고국으로 돌아왔다.

천운(天運)으로 돌아왔던 그들을 기다린 것은 안타깝게도 이 땅에서 살아남았던 이들의 싸늘한 눈총이었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했던 비극의 주인공들을 뒤늦게나마 감싸기는커녕, 약소민족의 비극이 으레 그렇듯, 오히려 그들을 국가적 수치의 속죄양으로 삼는 사회적 멸시를 자행했다. 아낙네들을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이란 뜻의 ‘환향녀(還鄕女)’로, 사내들을 ‘오랑캐 포로’라는 뜻의 ‘호로(胡虜)’라 부르며 냉대했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남녀를 욕할 때 퍼붓는 ‘화냥년’ ‘호로 새끼’란 비어(卑語)로 그 말씨가 끈질기게 남았다.

후금 오랑캐에게 당했던 억울함을 되받아치지 못한 채 우리끼리 서로 네 탓이라 손가락질만 했던 지경에서도 뜻 있는 식자가 문자로 울분을 삭혔음은 그나마 가상했다.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은 지리지 《택리지(擇里志, 1751년)》에서 “서융북적(西戎北狄) 동호여진(東胡女眞)이 중국의 한족을 밀어내고 다 한 번씩 황제가 되었는데 우리만 하지 못했다”고 통탄했다. 그렇지만 몇 사람이나 문자를 읽고 통분을 삭혔겠는가. 이 점에서 <최종병기 활>이 약소국 백성들의 가슴속 원한(怨恨)을 일거에 씻어준 해원(解寃) 씻김굿이 되었다.



종횡무진 우리 활 활약

줄거리는 조선 최고 활잡이의 누이가 혼인날, 느닷없이 청나라 군대의 습격으로 신랑과 함께 포로로 잡혀간다. 활잡이는 아버지의 활을 갖고 청군을 처치해서 기어코 동생을 구출해내는 무용담이 영화 줄거리다.

영화가 대박을 터트린다는 소문은 활터에서도 자자했다. 마침 영화 제작을 위해 기술 자문을 해주었다는 동료 활꾼이 내가 2006년에 펴낸 《활을 쏘다》 내용을 제작 측에 귀띔해 주었다기에 서둘러 영화를 봤다. 과녁 모양의 역사적 변천을 고증한 내용도 책에 들어 있었던 바, 영화는 조선왕조 숙종 임금 때에 쓰였던 과녁 모습을 등장시켰다.

<최후병기 활>을 보니, 영화가 재미를 더하려고 상상력을 마음껏 구사하는 장르임을 새삼 깨달았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영어의 ‘에스(S)’자 모양으로 좌우로 미세하게 흔들며 나는 사실을 현대스포츠과학이 ‘궁사의 모순’이라고 밝혔지만, 영화는 이 점을 지나치게 과장했다. 주인공의 화살이 숲속 나무 사이를 미사일처럼 잘도 헤집고 날아가게 설정했다.

영화다운 과장이긴 해도 우리 활의 빼어남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음은 국궁 애호가들에겐 참 고마운 일이었다. 나 같은 사람에겐 다시 한 번 우리 활의 특장(特長)을 살펴보라는 당부라 싶었다.

우리 활은 무엇보다 최장 사거리를 자랑한다. 이를테면 길이 2미터 정도로 반달 모양 일본 활은 대나무와 가래나무 두 재료로 만든 ‘복합궁’인 데 반해, 우리 활은 물소 뿔, 쇠심줄(牛筋), 대나무 등 탄력을 높일 수 있는 세 가지 이상 재료를 잘 엮은 ‘합성궁’이기 때문이다.

시위를 올린 활을 ‘얹은활’이라 한다. 그 길이가 1.1미터이며 영어의 ‘M’ 대문자가 좀 퍼진 모습의 ‘다섯 굽이 활’이다. 짧은 활이지만 최대 사거리가 250미터에 달할 정도로 다른 나라 것보다 월등하게 멀리 날고 관통력도 좋다.

그 사이 우리 활의 우수성에 대해 내가 들었던 구조적 설명은 얹은활의 손잡이 부분 ‘줌’이 오목하게 들어간 것에 착안한 정도였다. 오목하게 들어간 만큼 시위를 더 당길 수 있다는 직관적 설명이 고작이었다.

삼천년 만에 풀린 국궁 원리

얼마 전 오랜만에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유학시절의 ‘기숙사 동기생’ 임지순 교수를 만났다. 빼어난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서울대학교 최초의 석좌교수 영예를 안은 현직 물리학 교수인데, 연구년(硏究年)을 맞아 미국 동부의 명문 브라운 대학을 오간다 했다. 임 교수가 대뜸 우리 활의 우수성에 대한 물리학 풀이를 들은 적 있느냐, 물었다. 브라운대학 기계공학과 김경석 교수가 활 성능을 ‘역학(力學)’으로 규명했고, 그걸 ‘학부 기초 역학 교재’(Bow and Arrow Dynamics Laboratory, Introduction to Dynamics and Vibrations: An Engineering Freshmen Core Course, 1994~2009, Brown Univ.)로 활용한다 했다.

김 교수는 나노세계의 연구와 응용으로 국내외에서 크게 인정받아 2005년 호암상을 수상한 학자다. 내 공부는 사회과학 계통인지라 그의 전문분야에 대해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지만, 들은 바로 입문 교재는 물체 운동 원리에 대한 내용이고, 원리는 ‘중력에 의한 것’과 악기, 자동차 등 ‘공학적으로 설계된 것’에 대한 설명으로 나눠진다는 것.

김 교수는 그 사이 우리 문화유산의 우수성 규명에도 관심이 많아, 이를테면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소리가 멀리 전달되는 ‘한국 종(鍾)’의 우수성도 역학적으로 해석했다. 에밀레종을 들어보면 ‘웅웅웅’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를 반복하는데, 그건 종에서 나온 진동이 다른 두 개의 소리와 서로 상승하며 강약을 반복하는 까닭에 여운도 길고 멀리 뻗게 한다는 것. 종에 이어 우리 활의 빼어남도 증명했으니, 이런 성과야 말로 ‘과학 한류(韓流)’가 분명하다.

그림은 영국형 장궁에 대비되는 우리 활의 우수성에 대한 증명이다. X축은 쏜 직후의 화살촉 이동 거리, Y축은 활이 화살에 전달하는 힘이다. 화살에 전달되는 추력(推力)에서 점선은 영국 활이고, 실선은 국궁이다.

국궁의 특이성은 화살 추력의 ‘꼭지점(peak)’이 둘이라는 사실이다. 발시(發矢)하자마자 처음 0.1미터 부근에서, 그리고 0.45미터 부근에서 꼭지점이 또 다시 나타난다. 시위가 화살을 ‘두 번 강하게 쏘아 붙여’ 준다는 뜻이다. 꼭지점이 한 번밖에 없는 다른 나라의 반월형 활에 대비되는 것이다.

왜 두 차례 쏘아 붙임 현상이 나타나는가. M자로 굽은 모양의 우리 활에서 시위를 놓으면, 대개 길이 1미터인 시위 줄이 뛰어나가면서 처음엔 당연히 1미터 전체 부분이 화살을 밀어준다. 잠시 뒤 시위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은 굽은 활의 아래·위 부분, 곧 활 부위 전문용어로 오금과 도고지 사이 부분에서 막히고, 나머지인 시위 가운데 부분으로 대충 0.5미터 정도만 전진한다. 추력 에너지가 좁은 부분에 모이면 다시 한 번 강하게 화살을 쏘아주는 효과가 나타남은 해안으로 밀려온 파도가 양쪽만 있고 중간부분이 뚫린 방파제를 통과할 때 뚫린 중간부분에서 높이도 올라가며 속도도 빨라지는 광경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결과가 김 교수의 강의 교재에 등장한 시점은 1990년대 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서야 겨우 내가 전해 들은 것이 아쉽지만, 우리가 우랄-알타이계통 다섯굽이 활을 쏜 역사가 3천 년임을 기억한다면 그 정도 시간 지체는 약과다. 우리 활의 미덕이 베일에 가려 있은 지 3천 년이나 묵은 역사적 궁금증을 김 교수가 단박에 풀어헤쳤지 않은가.

김 교수의 연구업적을 소개해 준 임지순 교수는 영예의 미국 국립과학학술원 회원으로도 초빙된 정상급 과학자다. 그런 그가 2008년 중반, 나라를 온통 뒤흔들었던 광우병 소동 때 미국산 쇠고기를 먹더라도 건강에 문제가 없음을 아무리 강조해도 아내와 자녀들조차 안심시킬 수 없었다 한다. 그 지경에서 과학자로서 무력감을 느꼈다고 토로했음이 신문 칼럼(황호택 칼럼, <과학과 이성>, 《동아일보》, 2008. 6. 21)에 길게 인용된 적이 있었다. 그때 임 교수는 “과학자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이번에 나에게 우리 활 역학 규명을 귀띔해 준 것도 그 책임감의 발현이었던가. ‘한류 바람’이 이처럼 첨단 과학으로도 탄력을 받았으면 좋겠다.

글_ 김형국 서울대 명예 교수

201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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