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6)괴산 삼송리 소나무

입력 : ㅣ 수정 : 2011-11-3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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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600년 세월… ‘王松’으로 추대 받다
농경을 살림살이의 근간으로 삼고 살아가는 대개의 민족들은 나무를 비롯한 자연물을 경배의 대상처럼 신성하게 여겨왔다. 애국가에 소나무를 등장시키는 우리도 물론이다. 유난히 소나무를 좋아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소나무 가지를 꺾어 태어났음을 알리고,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살면서, 소나무 장작을 태워 지은 밥을 먹고 자라다가 소나무로 만든 관에 들어가 죽는다.”는 말을 할 정도로 소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소나무를 빼놓고 우리의 정신문화나 살림살이를 표현할 방법은 찾을 수 없다. 사정은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지난해의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소나무라고 대답한 우리 국민은 전체의 67.7%나 될 정도다.
소나무 중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의 위용을 갖춘 괴산 삼송리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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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중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의 위용을 갖춘 괴산 삼송리 소나무.



소나무라는 이름에서부터 우리가 좋아하는 나무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소나무는 나무 앞에 ‘솔’이 붙어서 이루어진 이름인데, ‘솔’은 ‘우두머리’ ‘으뜸’을 뜻하는 순우리말 ‘수리’에서 나왔다. 소나무를 ‘나무 가운데 으뜸’으로 본 것이다. 그런 소나무 가운데에서 ‘왕소나무’라는 별명이 붙은 나무도 있다. 그야말로 ‘으뜸 중의 으뜸’인 나무다. 천연기념물 제290호인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소나무가 그렇다. 물론 왕소나무라는 별명은 이 지방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어서, 굳이 이 나무가 왕이어야 할 합리적 까닭을 찾는 건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 이 나무를 ‘왕’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귀하게 여긴 사람들의 충정에 깊은 뜻이 있을 뿐이다.

●소나무의 으뜸으로 여기며 지킨 나무

나무가 있는 삼송리는 글자 그대로 오래전에 세 그루의 훌륭한 소나무가 있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세 그루 가운데 두 그루는 고사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금은 ‘왕소나무’로 부르는 한 그루의 소나무만 남아 있다.

마을에서 붙인 별명이라고는 하지만, 삼송리 소나무는 실제로 왕으로 불러도 될 만한 의젓한 분위기를 갖추었다. 왕소나무는 마을 뒤편의 낮은 언덕 위에 서 있는데, 그 곁으로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들이 둘러서 있어서 마치 하나의 작은 솔숲처럼 보인다.

왕소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소나무들도 족히 100살은 넘어 보이는 큰 나무들이다. 마치 가운데에 위엄을 갖춘 임금이 자리를 잡고 그를 호위하는 무사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서 있는 듯한 분위기다. 호위무사처럼 둘러선 소나무들은 모두 18그루였다.

그러나 최근 이 나무들 가운데 4그루가 사라졌다.

껍질에서 붉은 빛이 선명하게 도는 삼송리 소나무의 줄기.

▲ 껍질에서 붉은 빛이 선명하게 도는 삼송리 소나무의 줄기.

●왕을 위해 희생된 4그루의 호위무사

왕소나무에 바짝 붙어 서 있던 4그루의 나무가 예리한 톱날로 잘린 밑동만 드러낸 채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 바람에 멀리서 보아 순한 곡선을 이루었던 솔숲은 가운데가 잘려나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솔숲 전체적인 모습이 흉측해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생경한 모습이다.

“그냥 보기에는 예전 모습이 좋아 보였지만, 왕소나무의 생장에 문제가 있었어요. 한쪽에 높은 키로 늘어서 있는 소나무들 때문에 왕소나무는 반대편으로만 가지를 뻗었잖아요. 그렇게 오래 놔두면 왕소나무는 균형을 잃게 될 수도 있겠지요.”

괴산군청 문화관광과의 문화재 관리 담당인 김영근씨의 이야기다. 실제로 왕소나무를 볼 때에는 적잖은 아쉬움이 있었다. 멀리서는 무성한 솔숲이 좋아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한쪽으로 비스듬하게 솟아오른 왕소나무의 줄기가 조금은 불편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나뭇가지를 한쪽으로만 펼친 것도 그랬다. 하지만 바로 곁에 늘어선 다른 소나무들이 꽤 큰 나무여서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8년이었지요. 전문가들의 조사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어요. 왕소나무를 더 오래 보존하려면 생육 공간을 확보해 주어야 했지요. 결국 곁의 다른 소나무들을 베어내야 했지만, 그 나무들도 큰 나무여서 머뭇거렸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4그루를 희생시키기로 했어요.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 4그루를 위한 고사를 지낸 뒤에 신중하게 베어냈지요.”

왕소나무를 호위하며 수백 년 동안 왕의 위엄을 지켜준 소나무들의 슬픈 운명이었다. 그래도 왕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이 땅에서 사라져야 했던 소나무를 위해 고사를 지내며 명복을 빌어준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있었기에 다행이지 싶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왕소나무에서 마을 당산제를 지냈고, 그 주위의 소나무들도 신성하게 여긴 나무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웅장·기묘… 또다른 별명 ‘龍松’


600살쯤 된 것으로 짐작되는 왕소나무는 키 13.5m, 줄기 둘레 4.91m의 매우 듬직한 수형의 소나무다. 땅에서 3m쯤 되는 높이에서 나무 줄기가 둘로 갈라지면서 다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지를 펼친 왕소나무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뿐만 아니라, 수천의 가지들은 하나같이 기묘하게 비틀리고 배배 꼬이면서 뻗어나갔다. 급하지 않고, 웅장하되 매우 기묘하다. 신화 속의 용이 하늘에 오르는 형상이 꼭 이렇지 싶다. ‘용송’(龍松)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붙은 것도 그래서다. 보면 볼수록 이 나무를 왜 ’왕소나무‘로 부르는지 이해할 수도 있을 만큼 장엄한 모습이다.

“당장은 조금 어설퍼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이 빈 공간으로 왕소나무가 가지를 뻗을 겁니다. 물론 시간이야 적지 않게 걸리겠지만 왕소나무뿐 아니라, 곁의 소나무들까지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으로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당장 조금 불편하고 아쉽더라도 다음 세대를 내다보며 한 그루의 나무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걱정과 지혜로운 수고가 고마울 수밖에 없다.

글 사진 괴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2011-12-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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