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열린세상] 대북정책 원칙과 유연성의 불편한 진실/유호열 고려대 교수 북한학과

[열린세상] 대북정책 원칙과 유연성의 불편한 진실/유호열 고려대 교수 북한학과

입력 2011-10-14 00:00
업데이트 2011-10-14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2008년 12월 이후 중단되었던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남북 수석대표 회담이 이미 2차례 개최되었고 조만간 2차 미·북 간 회담도 성사될 전망이다. 집권여당의 대표가 처음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하여 운영실태를 파악하고 정부에 대해 보완책을 주문하였다. 7대종단의 대표단 역시 평양을 방문하여 북측과 지속적인 교류협력을 하기로 합의하고 돌아왔다. 러시아 천연가스 송유관의 북한지역 통과 등 남북한-러시아를 잇는 새로운 경협이 가시권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아직까지 이러한 일련의 변화 조짐을 놓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 근간인 ‘비핵-개방-3000’이나 원칙 있는 대북 접근이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연한 상호주의, 신축성 있는 접근, 실용적 대북정책 등 변화를 암시하는 수식어가 언론 매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나 혼선을 초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통일부장관이 교체되고, 싫든 좋든 조기에 선거 정국으로 접어든 이상 정부로서는 신속히 입장을 정리해야 그마나 레임덕의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대북정책의 원칙을 고수하고자 할 때 핵심은 천안함 폭침 이후 발표된 5·24조치의 존치 여부일 것이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시인, 사과, 책임자 처벌 등 북한 당국의 책임 있는 조치가 없으면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대규모 식량원조나 경협을 통해 북한의 비위나 맞추고 적당히 화해협력의 모양새를 갖추려 했던 방식은 남북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로 발전시킬 수 없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도 하다.

반면 정책의 원칙보다 당면 과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 소위 유연한 접근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면서도 천안함 폭침에 대한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하고, 대화를 통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가되 이를 위한 우호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5·24조치를 부분적으로 완화함으로써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해 남북관계를 활성화하려는 복안인 것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개성공단을 방문한 뒤 우리 입주업체의 민원을 청취하는 형식을 빌려 개성공단 내 건축이나 금융제재 완화, 개성과 개성공단 간 도로 보수, 통근 버스 운행 등 5·24 조치를 완화하는 내용을 정부에 건의했다.이처럼 원칙을 고수하며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노력은 남북관계의 경색에 대한 안팎의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결국 북한이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지 않더라도 임기말까지 원칙을 고수할 경우 차기 정부에 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남북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관점에서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유연한 접근은 남북관계의 경색과 이로 인한 한반도 정세의 긴장국면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나 북한의 태도나 반응에 그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에서 타협책이다. 궁극적 목표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원칙의 고수가 역사적 접근이라면, 유연성은 보다 정치적이고 정무적 판단에 기초한 접근법이다.

대북정책의 원칙을 고수할 때 장단점이 있듯이 유연한 접근 역시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대북정책의 전환기에서 원칙과 유연한 접근이 혼동되거나 무분별하게 혼용되어서는 안 된다. 원칙과 유연성을 단순 합성하여 중간자적 입장에서 문제를 풀려고 할 경우 자칫 냉탕, 온탕을 왔다갔다하며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이 되면 안 된다. 유연한 접근은 방법이자 전략이다. 원칙만 있고 전략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원칙 없는 전략은 더더욱 위험하다. 대북정책은 어느 한 정권의 임기 내에 완성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인도적 지원 확대, 사회문화 교류협력과 개성공단 활성화 등 새롭고 유연한 접근이 지난 3년반 동안 지속된 원칙의 일관성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 단계적이고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안목을 갖고 차분히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2011-10-14 30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