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잡스] 55년생 ‘IT 삼국지’ 저문다

[굿바이, 잡스] 55년생 ‘IT 삼국지’ 저문다

입력 2011-10-07 00:00
업데이트 2011-10-0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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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IT)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이끌고, 무기가 아닌 기술로 세계를 휩쓴 천재들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5일(현지시간)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타계는 빌 게이츠 빌 앤드 멀린다 재단 이사장, 에릭 슈밋 구글 이사회 의장과 함께 만들어낸 ‘IT 삼국지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반적인 천재를 넘어선 천재, 이른바 ‘아웃라이어’로 불렸던 1955년생 동갑내기 3인방의 경쟁은 지난 수십년간 전 세계인의 생각과 생활을 변화시키고 유행을 창조해냈다. 특히 잡스는 지난 8월까지 3인방 가운데 유일하게 CEO직을 유지했던 터다. 앞서 게이츠는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MS) 경영에서 손을 뗀 뒤 사회사업에만 매달리고, 슈밋은 올 초부터 명목상의 이사장 직함만 갖고 있다. 이들이 펼치는 상상과 혁신의 향연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이들은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서로 경쟁하면서 창조해낸 작품들은 시대의 정점에 섰고, 그 자체로 ‘제국’을 이뤘다. 잡스가 1970년대 말 퍼스널컴퓨터(PC) 시대를 처음으로 열자 게이츠는 PC를 지배하는 소프트웨어 ‘윈도’로 군림했고, 뒤늦게 뛰어든 슈밋은 PC와 인터넷의 개념을 바꾼 검색엔진 구글을 앞세워 막강한 파워를 휘둘렀다. 삼국지의 균형은 때론 흔들렸지만 경쟁 패배자는 언제나 새로운 제품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그 과정에서 IT는 진화를 거듭했다. 그 혜택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갔다. PC를 포기한 PC의 창조자 잡스, 남의 소프트웨어를 훔치는 것도 서슴지 않은 황제 게이츠, 겉과 속이 다른 ‘포커페이스’ 슈밋은 확인되지 않은 에피소드만으로도 이름을 떨친 ‘셀레브리티’(유명인사)이기도 하다.

‘이들이 왜 하필 1955년생인가.’라는 질문은 IT업계뿐 아니라 경영학과 사회학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아웃라이어’를 쓴 말콤 글래드웰은 이들의 성공배경에 ‘시대의 은총’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고교 시절은 전자계산기에 불과했던 컴퓨터의 가능성이 주목받던 시기다. 특히 대학에 입학한 1975년은 컴퓨터의 중추인 마이크로프로세서가 8비트, 16비트를 구성하며 소형화·고성능화하기 시작한 때다. 리드칼리지를 중퇴한 잡스와 하버드를 중퇴한 게이츠가 자신 있게 창업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도 남들보다 먼저 컴퓨터의 무한한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까닭이다. 슈밋 역시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혁신적인 프로그램 ‘자바’(JAVA) 개발을 주도, 시대의 흐름에 동참했다. 물론 1955년의 법칙은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창업자인 앤디 백톨샤임, 월드와이드웹(WWW)을 만들어 인터넷의 기초를 제공한 영국의 팀 버러스 리 역시 1955년생이다.

MS는 2008년 게이츠의 퇴임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잡스 생전의 마지막 애플 제품인 아이폰4S는 최악의 혹평을 받았다. 슈밋으로부터 구글을 돌려받은 젊은 창업자들의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이들이 없는 IT세계는 이미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다.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2011-10-0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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