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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 조금은 특별한 여행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 여행은 선택! 낯선 곳에서 깊은 그대를 만나라

[여는 글 | 조금은 특별한 여행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 여행은 선택! 낯선 곳에서 깊은 그대를 만나라

입력 2011-09-18 00:00
업데이트 2011-09-1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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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어딘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장마와 무더위, 에어컨으로 인한 ‘신종 추위’ 때문에 몸은 축나고, 주변에 하나둘 휴가를 떠나면 나만 외톨이가 된 심정이다. 텔레비전도 난리다. 늘씬한 여성과 초콜릿 복근으로 무장한 남성들이 푸른 바다에서 물을 튕기며 행복한 모습을 자랑한다. 초콜릿 복근도 없고, 남태평양으로 떠날 돈도 시간도 없는 나는 그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한 번 떠나볼까?’ 하는 마음도 시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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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편안함과 게으름은 시들어버린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우리는 손가락 하나면 물건을 살 수 있고, 순식간에 더위를 쫓을 수 있는 시대에 살기에 길 떠나면 고생이다. 또 규칙적으로 사는 현대인들이 그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쉽지 않다는 것은 그 만큼 힘이 든다는 것인데, 이때 게으름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조금은 특별한 여행에 대한 팁을 기대하고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여행을 하겠다 마음을 먹고 길을 떠나면 일상의 편안함은 없다. 그것은 돈과 가이드가 확실한 관광의 영역이지 여행의 영역은 아니다. 여행은 선택의 문제다. 여행에서조차 ‘일상의 것’들을 버리지 않기를 원하는 분들은 글 읽기를 멈추길 바란다.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하는 이들에게 이 글이 몇 가지 좋은 팁을 제공해 줄 거라 굳게 믿는다.



환상을 버리자

우리는 여행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처럼 숨 막히는 모험이 펼쳐질 것 같고, <비포 선라이즈>처럼 여행지에서 멋진 남자(혹은 여자)를 만날 것 같다. 또 광활한 풍경 속에서 전혀 다른 나를 만나 이번 여행을 계기로 새로운 삶을 살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내 여행은 환상적일 것이다’가 된다. 실제로 환상을 갖고 여행을 준비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행에 그런 환상은 없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항변할 수 있다. 내 친구는 올레길을 걸으며 또 다른 자아를 만났고, 김 대리는 유럽에서 근사한 데이트를 했으며, 후배 녀석이 동남아시아를 다녀와 보여준 사진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이렇게 명증한 증거가 있는데 그런 말을 하다니, 필자가 거짓말 하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의 여행이지 그대(그리고 나)의 여행은 아니다. 나는 오래 걸을 체력이 없고, 이성이 호감을 느낄 매력도 없으며(필자는 그런 매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좋은 사진사가 되지도 못한다.

이쯤 되면 여행의 환상은 산산조각 난다. 여행을 가지 말라는 소리인가? 아니다. 환상을 버리자는 말이다. 내가 좋아 떠난 여행, 내가 다니고 싶은 곳 마음껏 다니면 됐지, 환상적일 필요까지 있을까? 여행도 어차피 누군가 사는 곳으로 가는 것인데, 그곳이 그렇게 환상적이라면 갈 것은 여행이 아니라 이민이다. 여행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할 것을 권한다. 그래야 언제든, 어디든 떠날 수 있고, 비로소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환상을 버리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

변신놀이

여행을 떠나기 위해 우리는 많은 공부를 한다. 국내고, 국외고 ‘가자!’ ‘친구’ ‘백배 즐기기’ 등 여러 이름을 단 여행안내서가 친절하게 여행지를 소개한다. 출국 전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학습하고, 교과서처럼 가방에 끼고 간다. 그런데 난 이런 방식의 여행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많이 한 우리는 공부를 하면 꼭 써먹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공부를 많이 한 만큼 여행지에서 많은 것을 보고 와야 하는데, 이게 엄청난 부담이다.

지난해 터키 여행을 하던 중간쯤, 카파도키아에서 한 여행자를 만났다. 일주일 휴가를 내고 온 여행자는 아침부터 다음날 일정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매우 아쉽게도, 오늘과 현재, 그리고 여행을 즐기는 여유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보는 거 반으로 줄이시고, 마음 편하게 여행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초면에 주제넘은 소리일까 싶어 마음속에 담았던 말이다. 여행안내서 보고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인터넷에 올리는 여행은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한다.

여행의 목표가 볼거리가 아닌 낯선 곳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나’이면 어떨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한 행동대로 나를 기억한다. 내가 잘 웃으면 잘 웃는 사람으로, 말을 잘 하면 말을 잘 하는 사람으로…. 노력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건 여행을 떠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짜릿한 특권이다. 또 여유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는데, 그 속에서 그동안 보지 못한 멋진 나를 만날 수도 있다. 에펠탑보다 따뜻하고 마음이 큰 당신이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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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여행을 위한 조금의 팁

환상을 버리고, 여유를 가지면 여행 준비는 거의 마친 셈이다. 이제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아니 옆 동네만 가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은 실전이니 몇 가지 팁을 나누고자 한다.

먼저 여행지를 선택하는 방법이다. 무성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냥 가고 싶은 데를 가면 된다. 세상 모든 곳은 우리가 평생 가도 경험치 못할 각자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리저리 재는 게 아니라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동경하던 곳이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주저 없이 선택하자. 유년시절부터 꿈꾸던 곳에, 그 사람이 앉았던 곳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여행지를 정했으면 그 나라를 알아야 한다. 여행안내서보다는 시, 소설 등 문학이나 영화, 음악이 더 좋다. 창작자들이 오래 고민해 만든 작품들 속에서 그 나라를 가장 쉽게, 깊이 만날 수 있다. 필자는 터키에 가기 전에 오르한 파무크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을 읽었는데, 톱카프 궁전과 세밀화를 보면서 그들의 눈물과 숨결을 느꼈다. 이왕이면 그 나라 언어를 배워가는 것도 좋다. 우리나라에 오면서 “안녕”이란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을 보면 ‘웃기는 놈’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가. 많이 알수록 사람들과의 소통은 편해지고, 관계가 깊어지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제 어디 가고, 어디서 먹고 잘까가 문제인데, 이것 또한 여행지에서 결정을 하는 것이 좋다. 숙소야 어느 정도 정보를 구해 가는 것이 좋겠지만 여행지나 식사까지 그러는 건, 썩 권하고 싶지 않다. 좋은 곳은 현지인들이 더 잘 알며, 여행안내서에 나온 사이 음식점은 문을 닫았을 수도 있다. 현지인, 여행자들에게 물으며 여행을 하면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여행에서 낯선 사람들, 낯선 시공간과 어울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그게 여행의 참맛이다(현지인들의 상술에 넘어가거나 이상한 경험(?)을 하라는 건 절대 아니다).



여행을 떠나요!

이제 떠날 때다. 이런 글 백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가서 그곳의 공기를 느끼고 사람들과 말을 섞어 보는 게 훨씬 좋다. 전 세계인과 함께 웃고 길을 걷는 건 언제 생각해도 짜릿한 일이다. 이렇게 즐거운 여행을 하는데 조금 힘들다고 짜증을 낼 필요는 없다. 사실 여행을 떠나는 순간 힘든 일이 비일비재하다. 말도 통하지 않고, 걸어야 할 길은 많고, 짐은 무겁다.

이럴 때 ‘인내’라는 마음속 비장의 카드를 꺼내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다. 돈 내고 먼 데까지 가서 속상한 건 누가 봐도 손해다. 또 사람 일이란 게 변화무쌍하여 처음 힘들다고 투덜대면,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길 때 맘 놓고 좋아하기도 민망하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면 반드시 잊지 못할 추억은 돌아온다.

여행지에서 일상적인 나는 잠시 잊자. 그곳에서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될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과 편견이다. 끝까지 내 생각 붙잡고 있으면 내가 만나는 사람은, 세상은, 그리고 여행은 비뚤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나를 잠시 잊으면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열린 마음으로 씩씩하게 길을 걸으면 조금은 특별한 여행이 그대 앞에 있을 것이다. 이번 여름, 굳이 먼 곳이 아니더라도 낯선 곳에서 깊은 그대를 만나길 바란다.

글·사진_ 안효원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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