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side] 철회 478건·부결 5건… 18대국회 퇴짜법안들의 사연

[Weekend inside] 철회 478건·부결 5건… 18대국회 퇴짜법안들의 사연

입력 2011-08-20 00:00
업데이트 2011-08-2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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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변심·괘씸죄 불똥·해머폭력… 우리시대 자화상

18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19일 현재 1만 2203건이나 된다. 처리된 법안이 5519건이고, 계류 중인 법안은 6684건이다. 처리의 형태는 가결(원안 또는 수정), 부결, 폐기, 철회로 나뉜다. 이 중 철회나 부결의 형태로 ‘퇴짜’를 맞은 법안이 가장 딱하다고 볼 수 있다. 철회는 발의한 의원이나 정부가 법안을 스스로 거둬들였음을 의미하고, 부결은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관문을 통과했는데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음을 뜻한다. 18대의 철회 법안은 478건, 부결 법안은 5건이다. 동의(승인)안 중에서도 10건이 철회됐다. 철회되거나 부결된 법안이 처리 법안의 10%에 가까운 셈이다. 최소한 의원 10명이 서명해 발의한 이들 법안이 왜 꽃을 피우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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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수정안 친이·친박 세대결

철회 사유부터 살펴보자.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은 지난 4월 출퇴근 시간에 전세버스를 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7명이 발의안에 서명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버스와 택시 노조가 반발했다. 노동계 출신의 동료 의원이 갑자기 명단에서 빼달라고 ‘배신(?)’했다. 공동 발의자 1명을 빼려면 철회 절차를 밟아야 한다. 철회는 발의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박 의원은 어쩔 수 없이 14명의 동의를 얻어 철회안을 냈다. 하지만 그는 6월에 다시 개정안을 냈고, 현재 국토해양위원회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민심’도 철회의 중요 요인이다. 한나라당 이명규 의원은 정부의 부탁을 받고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냈다가 최근 철회했다. 이 의원 측은 “영리병원에 대한 찬반이 첨예하고, 과연 이 법안이 국민 의료 서비스 향상에 부합하느냐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심경 변화’도 한몫한다.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지난 6월 대학의 등록금 수입 중 85%를 교육비로 쓰도록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했다. 등록금 이슈가 커지자 교육비 환원율을 95%로 높이는 더 강력한 개정안을 내기 위해 계획적인 후퇴를 했다.

동의(승인)안 철회를 들춰 보면 정부의 아픈 ‘과거’가 나타난다. 김태호 국무총리 임명 동의안과 정동기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철회가 대표적이다. 2008년 ‘해머 폭력’ 사태 끝에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통과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은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해 오는 바람에 철회됐고, 한·유럽연합(EU) FTA 비준 동의안은 번역 오류로 철회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부결 법안도 남모를 사연을 갖고 있다. 지난해 6월 본회의에서 부결된 ‘신행정수도 후속 대책을 위한 연기·공주 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세종시 수정안)은 한나라당 내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 명단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형소법개정안’ 여론몰이에 밀려

한나라당 이한성 의원이 발의했던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일사천리로 법사위까지 통과했다가 본회의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이 개정안은 약식명령을 받은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할 경우 약식명령의 형보다 더 중한 형을 선고하지 못하게 하는 현행법을 고치자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트위터를 통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여론에 불을 지른 뒤 본회의에서 반대 토론에 나섰다. 결국 이 의원의 주장이 먹혀 개정안은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발의했던 ‘학교체육법 개정안’은 2009년 2월 국회에서 쟁점 법안이 아니었는데도 부결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교육과학기술위원회 파행의 ‘주범’으로 안 의원을 꼽았기 때문에 ‘괘씸죄’가 적용된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시들어 버린 이들 ‘사산(死産) 법안’에는 이렇듯 ‘배신’과 ‘변심’, 그리고 세상의 변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쟁점 현안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과 매한가지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투영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인 셈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2011-08-2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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