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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통일] (26)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나와 통일] (26)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입력 2011-07-26 00:00
업데이트 2011-07-2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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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는 클래식이 없다고요? 남한사람 北 문화 너무 몰라”

2001년 어느 날. 나는 평양의 한 연습실에서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가을의 속삭임’을 연주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보위부에 불려 가 자기비판서 10장을 써내야 했다. 누군가 ‘김철웅이 반동적인 음악을 연주한다’고 신고한 것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피아니스트인 내가 피아노를 쳐서 보위부에 불려 갔다면 내 인생이 앞으로 별 볼 일 없겠구나, 유학 가서 배운 것도 하나도 쓸모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내가 탈북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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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평양에서 나는 매우 흡족한 생활을 했다. 고위당원인 아버지와 교수인 어머니 아래에서 벤츠도 몰고 어려울 것 없는 생활을 했다. 그런 내가 2004년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린 ‘북한 인권 국제대회’에 참석해 들은 북한 주민들의 실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버지가 굶어 죽고, 언니는 중국에 팔려 가고, 살아남기 위해 정치범 수용소를 탈출했다는 얘기를 듣고 ‘설마…, 북한에 그런 사람들이 있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많은 탈북자들이 공통된 증언을 하는데 어찌 거짓말이겠는가. 북한에서 편안한 삶을 살았던 내가 그들을 착취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 뒤로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고, 공연차 외국에 나갈 때마다 세계인을 상대로 북한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피아노를 자유롭게 치지 못해 북한을 떠난 것도 인권의 문제다.

●‘반동음악’ 연주했다고 보위부 끌려가

남한에 처음 왔을 때 기자들로부터 ‘북한에도 클래식이 있느냐.’는 ‘무식한’ 질문을 들었다. 북한에서는 최소한 연주할 때 한 악장 끝났다고 박수를 치진 않는다. 북한의 음악 수준은 매우 높다. 음악인의 숫자를 비교하면 적을지 몰라도 정예 멤버의 실력은 수준급이다. 서울대 음대보다 평양음대의 수준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남북 통일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나는 북한 사람들이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들의 문화를 안다. 그들의 생각을 남한에 알려줘서 통일이 되기 전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연주회 때마다 꼭 들려주는 자작곡 ‘아리랑 소나타’에는 남북한의 문화를 연결하는 끈이 되고 싶다는 내 꿈이 담겨 있다.

통일이 된다면 북한 사람들은 남한 문화에 금방 적응해 따라가겠지만, 남한 사람은 북한 문화를 이해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부터 남한이 북한의 문화를 배우기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최소한 통일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한다. 남북이 합치는데 상대방의 문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한 사람들은 너무 노력을 안 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신문, 뉴스, 영화, 음악 등 북한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통일 이전에 문화부터 배워야

남한에 ‘북한문화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 영화, 북한 음악, 북한 책을 볼 수 있는 문화원 하나쯤 있다고 해서 남한 사람들이 빨갱이 물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통일은 서로가 동등한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는 요즘 중국을 통해 북한의 악보책을 모으고 있다. 북한 영화 음악 1000여곡, 피아노 연주곡 400여곡 정도를 모았다.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가사라는 게 흠이지만 북한의 역사이고 유물이다. 가사를 바꿔 한 곡씩 녹음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통일이 됐을 때는 이미 없어져 버리거나 남한 문화에 흡수돼 흔적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고유의 문화를 잘 지켜오고 있다. 지금이라도 북한의 음악을 들어보기 바란다. 그 곡이 촌스럽지 않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곧 통일을 해야 한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김철웅은 ▲36세 ▲평양음대 졸업 ▲평양 국립교향악단 피아니스트 ▲러시아 차이콥스키음악원 유학 ▲2002년 탈북 ▲2009년 뉴욕 카네기홀 공연 ▲영화 ‘김정일리아’ 출연 ▲현 백제예술대학 음악과 교수
2011-07-2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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