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엔도르핀적 격정에서 세로토닌적 삶으로/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열린세상] 엔도르핀적 격정에서 세로토닌적 삶으로/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입력 2011-06-16 00:00
업데이트 2011-06-1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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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반값 등록금 투쟁을 하고 힘빠진 모습으로 학교에 돌아오는 학생들을 보면 교수로서 참 미안하고 안쓰럽다. 고액 연봉을 받는 노동자들도 불만에 가득찬 파업을 하는 요즘이다. 모두들 삶이 고달프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아우성에 편승해 이해득실을 따지는 정치인들의 계산법에는 말문이 막힌다. 그럼 도대체 누가 행복한가? 더 큰 걱정은 정치가 바뀌고 제도가 개선된다고 해서 근본적인 불균형과 불평등이 별로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인류의 역사가 그러했다. 끊임없이 진보를 외치고 발전을 내세웠지만 삶의 질과 만족도는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문명론자들은 수렵채취시대에서 농경사회로, 다시 도시사회와 정보시대로 갈수록 진보고 발전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최근 연구들을 보면 수렵채취시대 사람들의 협동심과 영양상태가 현대인 못지않게 양호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농경시대 사람들의 노동강도는 그 이전 시대보다 더욱 가혹했으며, 삶의 스트레스가 훨씬 높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때부터 외형적 물질생산만 중시되고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뒷전이었다.

한 인문학자의 보고에 의하면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하드자족은 수렵을 해서 먹고 살아가는데, 위험을 뚫고 사냥감을 포획한 전사는 먹이의 분배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가 아니라 공동체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먹을 권리를 갖는 것이다. 더욱이 그 사냥꾼은 여성들이 최고로 선호하는 신랑감이 되었고, 이미 마을의 존경과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인물이 되었다. 엄청난 사회적 자본을 가진 셈인데, 사냥감 분배에조차 특권을 준다면 그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획득한 사회적 자본에 대한 사회적 세금을 내는 셈이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외치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보다 훨씬 차원 높은 삶이 아니겠는가.

물질적 성취가 곧바로 행복과 직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방식의 삶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많이 생산하는 대신 적게 원하는 삶의 지혜가 대안이다. 꼭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고 후손을 위해 지속가능한 자원을 남겨두는 아프리카 케냐 마사이족의 삶에서도 교훈을 얻는다.

나는 틈이 나면 강원도 어느 숙박시설에서 휴식을 취하곤 한다. 그곳에는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고 텔레비전은 물론 인터넷도 되지 않는다. 처음 얼마 동안은 첨단 정보로부터 고립된 금단현상으로 불편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세상도 변함없이 잘 돌아가고 어쩌면 나 때문에 고통받고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누군가가 가능성의 기회를 맞아 떠오를지 모른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생각이 다른 삶을 찾는 시작이 아닐까.

산업시대 앞만 보고 달려야 할 때는 우리 몸에 격정과 신기를 주는 엔도르핀과 노르아드레날린이 과다분비되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빨리빨리를 외치며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이만했으면 숨고르기를 통해 한번쯤 뒤돌아보면서 아직 뒤처져 걷는 힘든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볼 때다.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면 아무리 물질적 성장을 해도 삶의 질과 만족도는 더 이상 기대만큼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된 연구결과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무게중심이 주어져야 한다.

차분한 열정으로 행복과 창의력을 북돋아주는 세로토닌이 답이다. 세로토닌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극단적 대결, 격정적 환호, 샘솟는 의욕보다는 적절한 조절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도박 공화국이라는 자화상을 앞에 두고 더 빠르게, 더 자극적인 것을 양산해 내는 엔도르핀 문화와는 이제 작별을 고해야 한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고 일하는 보람을 통해 존재감을 느끼는 세로토닌 문화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우리 삶의 새로운 방향이 아닐까? 보통의 일을 대를 이어 묵묵히 지켜가는 힘, 화려한 외피를 두르는 것보다는 자신의 색깔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바로 세로토닌적 삶이다.
2011-06-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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