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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村)스러운 이야기 |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①] 지루하고, 신기하고, 재미있고, 시끄러운 네팔 버스

[촌(村)스러운 이야기 |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①] 지루하고, 신기하고, 재미있고, 시끄러운 네팔 버스

입력 2011-05-29 00:00
업데이트 2011-05-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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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네팔에 온 나는 히말라야에 올라 그곳의 추위를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곳의 제트기류에 몸을 맡기고 싶고, 그곳의 고도에 숨이 막히고 싶고, 하늘과 맞닿아 있는 눈이 부시도록 흰 산들을 원 없이 보고 싶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눈으로 소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알피니스토로서 느꼈던 고독 속에, 죽을 정도의 극한의 고통까지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무엇보다 그냥 단 며칠 만이라도 그곳에서 숨을 쉬고 싶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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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하기 전 히말라야 코스를 놓고 고심하다가 안나푸르나 라운드로 정했습니다. 코스를 정하고 카트만두에서 트레킹 준비를 하면서 정말이지 많이 설레고 많이 걱정되었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주로 봄과 가을 시즌에 많이 하는 편입니다.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는 우기라 트레킹이 어렵고, 겨울에는 너무 춥고 바람이 심해 피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냥 일반적인 코스는 겨울에도 트레커들이 많이 몰린다고 합니다. 다만 내가 선택한 안나푸르나 라운드 코스는 5,416m의 토롱라를 넘어야 하므로 겨울 동안은 거의 가지 않는 코스입니다.

우선 나를 안내해 줄 현지인으로 세종어학원의 학생인 잘생긴 26세 청년 J.P 라이를 추천받았습니다. 그 친구는 세종어학원에서 지지난학기에 수석을 한 사람으로 성실하고, 영특하고 예의발라서 영봉 스님이 총애하는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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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와 함께 관광성에 가서 트레킹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시장에 가서 트레킹에서 먹을 간식을 사고, 장비 점검을 했습니다. J.P는 한국말이 완전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었고, 그 코스는 다른 팀과 한 번 넘어본 경험도 있다고 하니 더욱 마음이 놓였습니다.

등반은 아니지만 그래도 5,416m나 되는 높이의 고개를, 더구나 겨울에 넘는 것이니 장비를 등반 못지않게 챙겨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떠날 때 기범이가 먹을 반찬과 책들을 가져가느라 내 짐은 최소로 줄여야 했으므로 등산에 필요한 옷이나 장비를 충분하게 챙기지 못해서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준비를 해서 출발하는 날, 새벽 카트만두 시외버스터미널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희뿌연 새벽에 많은 사람들이 짐을 들고 어딘가로 가기 위해 분주한 와중에 유일한 외국사람인 나를 보는 눈들, 아예 멈춰 서서 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빤~히, 눈도 깜빡이지 않고 민망하게 쳐다봅니다. 어른이나 아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아침 7시 출발 버스인지라 부지런을 떨며 6시 30분 정도에 도착했건만… 출발 시간인 7시가 지나고도 아직 버스는 정비중입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무심합니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차는 출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만 답답할 뿐이고, 나만 곤혹스러울 뿐이고, 나만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8시가 지나서야 내 배낭을 포함한 짐들이 버스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차장은 터미널을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호객을 하고, 사람들이 몰려오고, 자리를 잡습니다. 이제 드디어 출발하나 봅니다. 하지만 차장은 아직 몇 자리가 남았다고 또다시 호객하려 돌아다닙니다. 아마 차가 가득 찬 후에야 출발하려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닙니다. 버스는 시내 외곽 여기저기를 돌며 몇 번씩이나(아마 간이정유소) 멈추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큰소리로 호객하며 아예 자리뿐만 아니라 서 있을 틈도 없이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 버스엔 차장이 3명이나 됩니다.

버스의 크기는 우리나라 소형 버스 정도인데 자리 사이는 좁고 엄청 지저분합니다. 차장 3명이 간이정유소에 차를 세울 때마다 여기 저기 쫓아다니며 호객을 한 결과 차는 터질듯 가득 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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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출발하나 보다 하며 안도하는데 어쩌나! 이제는 음악을 엄청 크게, 차가 울리도록 틀어놓고, 일렁이는 버스와 함께 몸을 움직이며 따라 부르기까지 합니다. 운전수는 연신 경적을 울리며 곡예 운전을 하고, 시끄러운 음악 때문에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내 뒷좌석에 앉아 있던 4~5살 정도 된 아이는 짧은 머리를 처음 봤는지(네팔 여자들은 짧은 머리가 없습니다) 잡아 당겼다가 손가락으로 배배 꼬았다가 하며 신기해 합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를 말릴 생각은 전혀 없는지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를 아예 큰소리로 따라 부릅니다.

버스가 가다가, 어느 순간 멈추고 차장이 밖에 나가서 무언가를 사옵니다.

카트만두나 기타 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을 그 지역을 지날 때 찻길에 장사들이 나와 있으면 차를 세우고 흥정도 하고 사오기도 합니다. 네팔은 바다가 없는 관계로 물고기가 귀한데 가끔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길가에서 팔기도 해서 그것을 사기도 하고 사탕수수를 사기도 했습니다. 어떤 곳은 아예 시장 입구에 버스를 세우고 버스 운전수, 차장, 승객 할것없이 나가서 생필품을 사오기도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못 미치는 11시쯤 어느 휴게소에 들려서 점심을 먹는데 그 풍경 또한 재미있습니다. 현지인들은 거의 달밧이라는 그 나라 주식을 시켜 먹는데, 도대체 손은 씻었는지 모두 그냥 맨손으로 밥을 요리조리 섞어가며 좀 게걸스럽다싶게 먹습니다. 종업원은 밥과 약간의 카레를 들고 테이블을 돌며 더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가져다줍니다. 어떤 사람은 놀랄 정도의 속도로 놀랄 정도의 양을 먹어치우고 더 받아먹기를 계속합니다. 이 모든 풍경들은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쯧쯧 혀가 차치기도 했습니다.

지난날 몇 번 네팔에 왔다갔지만 현지 로칼 버스 여행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내게는 지루하면서도 신기했습니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어서 조바심이 났겠지만 이제는 그래도 느긋해져 이 모든 풍경이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먼지투성이 길을 언제 도착할지 모르게 하염없이 가야 하는 경험은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길 것 같았습니다. 큰 도시인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버스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내가 탄 버스는 트레킹 출발 지점 쪽으로 가는 버스라 더 그렇지 싶습니다.

어쨌거나 시간이 가는 만큼 거리는 줄어서 8시간 후에는 버스를 갈아타는 지점인 베시사하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때마침 우리의 트레킹 출발 지점인 부불레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려고 해서 달려가서 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호객 중이었던 버스였습니다. 차장은 아침과 마찬가지로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1시간이나 지체한 후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길은 과연 차들이 다닐 수 있기나 한 길인지 싶게 울퉁불퉁 했습니다. 버스는 한 시속 10km 정도로 기어갑니다. 약 10km를 한 시간 이상 지난 후에야 우리를 목적지에 내려두고 떠납니다. 얼마나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었던지 차라리 걷는 것이 편할 뻔했습니다. 그날 하루 동안의 버스 여행은 완전 도를 닦는 수준이었습니다.

날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고 새벽부터 용을 쓴 탓에 몸은 녹초가 되었고 트레킹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돌아갈 일부터 걱정이 되었습니다(어떻게 또 저런 버스를 타고 가지?).

어쨌든 피곤한 몸으로 롯지에 짐을 풀고 입산신고를 하러 가니 이미 카트만두에서 받아온 허가와 입산료 이외에 사진을 포함한 입산 허가서를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3배 정도 더 비싼 입산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했습니다.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 현지식인 달밧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허름한 롯지에 누우니 피곤한 와중에도 잠이 쉽게 들지 못합니다.

얼마 만에 히말라야에 왔는지, 이 알량한 장비와 옷으로 5,416m의 그 고개를 넘을 수나 있을지, 눈은 많이 오지 않았는지, 첫 경험을 앞둔 사람처럼 걱정 반, 궁금증 반으로 밤을 밝힙니다.

이제 안나푸르나 라운드 220여 km를 최소한 16일 동안 현지인 한 명과 단둘이 걷고 또 걸을 것입니다.

글·사진_ 남난희 《낮은 산이 낮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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